제2차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쳐오고 있지만 위기 상황에서 국가를 이끌어야 할 정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연일 터져 나오는 측근 비리에 휘청거리면서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이 가속화되고, 여야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서울시장 선거판에만 집중돼 있다. 경제 위기에서 국론을 모으고 이끌어가야 할 대통령과 여(與)·야(野)라는 국정의 3대 축이 중심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국가 부채 상한선 확대 여부에 대한 민주·공화당 간 정쟁으로 국가 신인도 하락 사태를 맞았던 미국처럼 정치 리더십의 실종이 진짜 경제 위기를 부를지 모르는 상황이다.
◆레임덕 늪에 빠진 정부
이명박 대통령은 주가가 103포인트 폭락했던 지난 23일 미국 교민 간담회에서 "내가 대통령이면서 (경제)위기를 두 번 맞는 게 다행"이라고 했다. 위기 극복에 대한 자신감을 강조한 말이었지만 여론은 냉담했다. '연말 위기론'과 '2차 쓰나미설'이 파다한 현 상황에서 적절치 않았다는 것이다.
김두우 전 홍보수석에 이어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 등 잇따른 측근 비리 의혹도 청와대의 리더십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위기 대응책을 쓰려면 국회와 여론의 강력한 지지가 필요한데 대통령이 야당은커녕 여당의 지원조차 받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물가가 뛰고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지만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장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시장의 신뢰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많이 떨어진 상태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지난 금융 위기 때는 정권 초라 리더십을 발휘했지만 정권 후반기엔 국민 고통을 수반하는 정책을 쓰기 힘들다"고 했다.
◆선거판에 빠진 여야
지금 여야의 최대 관심사는 금융 위기가 아니라 서울시장 선거다. 핵심 이슈도 경제가 아니라 무상급식 등 복지 문제다. 친박 중진 의원은 "엄청난 위기가 오는데 정치권은 선거에만 매달려 논의조차 안 하고 있다"고 했다.
내년 총선이나 대선으로 갈수록 복지 경쟁은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주요 대선 주자들의 관심사도 복지에 쏠려 있다. 유럽 국가들이 선심 정책으로 재정 위기를 맞았는데 우리가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우려가 적잖다. "정치권이 '복지 프레임'에 갇혀 경제 위기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는 "여야 없이 무료급식, 복지 쪽으로만 가고 있다"며 "내년 선거에서 정치 포퓰리즘으로 가면 유럽처럼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강봉균 의원은 "재정 건전성을 시급히 확보해야 하는데 여당마저 서슴지 않고 인기 영합 정책을 내놓고 있다"며 "줏대 없는 포퓰리즘 정책 남발은 정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증거"라고 했다.
◆복지 경쟁에서 경제 프레임으로
전문가들은 정치의 핵심 의제를 복지에서 경제로 되돌려야 한다고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경제 위기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복지의 틀에만 갇혀 있다. 경제적 비전을 갖고 대응하려는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며 "대통령과 여야 리더들이 합심해 대응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은 "국가 빚은 줄이고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데 정치권이 빚내서 선심 정책을 펴려 하면 (나라에) 망조가 든다"고 했다. 정부도 부채를 줄이고 외환 보유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태준 금융연구원장은 "금융 부문의 외화 유동성이 중요하다. 정부가 신속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