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영국 상원 금융규제위원회가 지난 1월 ‘미지의 미지(未知, Unknown Unknowns)’라 이름 붙인 보고서를 냈다. 지난 몇 년간 규모가 빠르게 불어난 사모 대출 시장의 속성과 위험을 파헤치려 영국 중앙은행·재무부를 동원해 만든 66쪽짜리 보고서의 결론은 이렇다. “사모 대출 시장이 금융의 시스템적 위험인지를 판단하기엔 데이터가 불충분하다. 그야말로 ‘미지의 미지’다. 재무부조차 위험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의 기억이 희미해졌을까.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한다.”

위원회가 지목한 ‘사모 대출’은 대출 펀드에서 돈을 빌리는 일종의 사채다. 은행 대출이나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하기엔 신용등급이 낮거나 이미 대출 한도가 찬 기업들이 주로 받는다. 연구 논문 ‘대마불사(大馬不死) 은행을 사모 대출로부터 지키기’ 등을 쓴 패트릭 코리건 미국 노트르담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지난 20일 WEEKLY BIZ와 화상 인터뷰에서 “영국 상원 보고서 제목은 현실을 완벽하게 포착했다”고 했다. “사모 대출 관련 정보는 지나치게 가려져 있습니다. 금융 규제와 공시 의무를 피하기 위한 의도적 눈속임에 가깝습니다. 지금으로선 사모 대출 시장 전체를 꿰뚫어보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코리건 교수와 인터뷰한 날에도 사모 대출의 위험 신호로 보일 뉴스가 잇따라 나왔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CEO(최고경영자)가 연례 주주 서한에 사모 대출의 잠재적 위험을 경고했다. 블랙스톤·모건스탠리·블랙록 등 대형 금융사가 사모 대출 펀드 투자자들의 조기 환매 요청에 시달린다는 소식도 연이어 보도됐다. 한국에선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1990년대 말 외환 위기를 회상하는 긴 페이스북 글을 올리고 “최근 사모 신용 시장의 불안은 이른바 ‘AI 버블론’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사모 대출은 무엇이고, 지금 이를 둘러싸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WEEKLY BIZ가 경제·법조계 전문가와 국제 기관 담당자의 목소리를 들어 사모 대출과 관련한 ‘미지의 조각’을 맞춰보았다.

◇대마불사 은행들, 사모 대출 깊이 연루

“원래는 사모 대출 펀드 같은 사모펀드가 투자를 잘못해서 박살이 난다 한들 금융 시스템으로 위험이 번질 가능성은 희박해야 합니다. 개별 투자자들이 자기 책임 아래 투자해 돈을 잃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위기에 빠질 경우 공적 자금의 지원을 받는 이른바 대마불사형 은행이 발을 들인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코리건 교수는 “예금·대출 금리 차로 만족하지 못하는 은행들에겐 규제의 한계까지 사업을 확장해 추가 수익을 얻으려는 속성이 있다. 대형 은행의 자금이 여기저기 얽힌 가운데 문제가 생기면 그 위험은 금융권 전반으로 번질 수 있는데, 현재 사모 대출이 바로 그런 모습”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현국·CGIG

국제통화기금(IMF)은 글로벌 사모 대출의 규모를 약 2조1500억달러로 추정한다. 10년 사이 네 배 수준으로 불어났다. 2008년 금융 위기 후 은행 대출 규제 강화로 인한 대안적 대출의 필요성, 기존 금융권이 소화하지 못하는 AI 분야의 막대한 시설 투자 경쟁, 저금리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을 좇으려는 투자 수요 등이 맞물리며 규모가 빠르게 커졌다. 코리건 교수는 “추가 수익을 노리는 은행들이 보험사 등 규제가 더 느슨한 계열사나 자산운용사 등에 돈을 대고 이들이 사모 대출에 투자하는 사례가 늘었다”며 “결과적으로 은행은 사모 대출에 자금을 대는 셈이지만 여러 단계를 거치는 바람에 은행 장부엔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최근 사모 대출엔 연·기금도 유입되며 일반 투자자의 은퇴 자금도 많이 들어갔다고 알려졌다.

은행권의 자금이 사모 대출에 실제로 얼마나 유입됐는지는 그야말로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IMF 등이 종종 인용하는 지표는 연방준비제도가 집계한 미국 은행권의 ‘비은행 금융기관(NBFI·Non-Bank Financial Institution)’ 대출이다. 2015년 초 약 3225억달러 규모였던 NBFI 대출은 2023~2024년 약 1조달러 규모가 될 때까지 비교적 안정되게 늘다가 지난해 갑자기 80%가 급증해 1조8000억달러를 넘었다.

아미트 세루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WEEKLY BIZ에 “이런 상황에 모종의 위기가 발생해 광범위한 자산 가치 하락을 초래하거나, 시중에 자금이 마르거나, 자산·대출 간 만기 불일치로 자산 매각이 강제되면 위험은 은행·보험사 등 광범위한 영역으로 번지게 된다”며 “사모 대출 펀드 그 자체보다는, 여러 기관이 얽히고설키며 형성된 그 복잡한 구조가 위험을 더 키운다는 뜻”이라고 했다.

◇10년 새 66배 늘어난 ‘AI 사모 대출’

사모 대출과 관련해 최근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AI’다. 성격이 다른 두 개의 접점에서 사모 대출과 밀접히 얽혀 있다. 첫째는 미국 빅테크 기업의 막대한 AI 투자로 인한 거품 우려, 둘째는 AI의 빠른 발전으로 인한 소프트웨어 기업의 위기다. 빅테크와 소프트웨어 기업엔 모두 막대한 사모 대출 자금이 들어가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AI 기업들의 사모 대출 잔액은 2015년 약 30억달러에서 지난해 말 2000억달러로 늘었다.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초거대 확장자)’라 불리는 빅테크 기업의 AI 설비 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는 과정에 기존 금융 시장의 대출·회사채로는 충당되지 못한 거대한 ‘구멍’을 사모 대출이 채우고 있다고 BIS는 분석했다.

에거먼 에렌 BIS 선임연구원이 지난 16일 발표한 보고서에 쓴 글이다.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자산을 인수·개발하는 특수 법인을 설립하고 이 법인이 사모 대출을 받는 형태로 자금을 조달한다. 이들 기업은 특수 법인의 소수 지분만 보유하고 장기 임대·사용 계약을 맺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기업 장부에는 대출이 드러나지 않는다. 임대료 등으로 상환되는 원리금은 사모 대출에 돈을 댄 투자자들이 가져간다. 이 대출은 때때로 빅테크 기업의 자산 담보 및 계약 보증을 통해 신용 등급을 끌어올린다.” 요약하자면 ‘겁나게 복잡한 구조’라는 뜻이다.

에렌 연구원은 “이런 구조는 상당한 규모의 사모 대출이 AI 기반 시설에 투입되도록 만들어 펀드뿐 아니라 이를 통해 사모 대출에 자금을 우회적으로 지원한 은행과 빅테크 기업 간 연계를 강화한다”고 했다. AI 설비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빅테크 기업 중 한두 곳이라도 사업에 차질을 빚을 경우 과잉 투자로 인한 손실이 은행권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다.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2028년까지 AI 설비 투자로 약 3조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이 돈을 누가 댈 수 있을까’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중 상당 부분이 사모 대출로 충당되고 있다고 BIS는 본다.

또 다른 ‘뇌관’으론 SaaS(Software as a Service)라고도 불리는 소프트웨어 분야가 지목된다. 최근 고성능 AI가 많은 소프트웨어를 대체할지 모른다는 전망이 확산하며 위기론이 번지는 과정에 이들 기업이 빌려간 막대한 사모 대출의 위험이 부각됐다. BIS가 공시 의무가 있는 상장 기업개발금융회사(BDC)만을 토대로 집계한 소프트웨어 기업의 사모 대출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5389억달러로 10년 전 76억달러의 70배로 급증했다. 약 20%의 펀드가 소프트웨어 기업에 돈을 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제 기구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모 대출의 위험은 몇몇 부도덕한 기업의 담보 사기 등 일부의 일탈 탓으로 여겨졌지만 불과 몇 개월 사이 사모 대출이 AI 및 소프트웨어라는 거대 산업과 분리하기 어려운 공동 운명체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라고 했다.

◇위험 가리는 ‘분산의 착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은행이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토대로 만든 증권과 파생상품에 광범위하게 투자한 가운데 이들 대출이 연쇄적으로 부도나며 촉발됐다. 신용 등급이 낮은 대출 수백~수천 개를 쪼개고 모아 만든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부채담보부증권)라는 증권은 은행도 투자 가능할 정도로 신용 등급이 높은 자산으로 둔갑했다. 위기가 닥치자 이런 상품에 투자한 은행들이 동시다발적 충격에 무너졌다.

사모 대출의 잠재적 위험은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과 비슷할까.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그렇다고 보는 쪽은 사모 대출 구조의 여러 단계에 구석구석 섞여 들어간 은행 자금, 여러 대출을 하나로 뭉쳐 신용 등급을 높인 복잡한 증권 시장의 형성, 높은 수익률만 좇아 위험을 외면하는 금융권의 탐욕 등이 닮았다고 지목한다.

사모 대출 시장에서 흔히 유통되는 CLO(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대출담보부증권)가 금융 위기를 촉발한 CDO와 유사, 심지어 동일하다는 시각도 있다. 코리건 교수는 CDO와 유사한 CLO의 위험을 ‘분산의 착시’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사모 대출 CLO의 위험은 위기가 오기 전엔 그림자 가운데 가려졌다가 일시에 겉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어디선가 ‘뇌관’이 점화됐을 때 은행권으로 위험을 번지게 할 잠재적 ‘폭약’ 중 하나로는 은행이 사모 대출에 제공하기로 약속한 ‘미사용 약정 대출’을 지목하는 전문가가 많았다. 약정 대출은 마이너스 통장과 비슷하게, 사모 대출 펀드가 자금이 필요할 때 은행이 빌려주기로 계약을 맺은 돈이다. 코리건 교수가 자체적으로 분석한 결과 미국 은행들이 사모 대출을 포함한 비은행 금융사에 약정하고 집행되지 않은 대출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9280억달러로 15년간 575% 급증했다. 코리건 교수의 말이다. “금융 위기는 어느 순간 모두가 ‘앗, 우리는 지금 위험한 상황이네’라고 문득 깨닫는 ‘정보 충격’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투자자들은 앞다퉈 돈을 회수하려 하기 마련인데 돈이 모자라진 대출 펀드는 은행으로 몰려가 일제히 그동안 안 쓴 마이너스 대출을 받으려 할 겁니다. 가능성이 작은 가상의 상황이지만 1조달러에 육박하는 대출을 은행이 갑자기 집행해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자를 갚는 대신 원금에 더할 수 있는 ‘PIK(pay in kind, 현물 상환)’ 제도, 일정 비율의 돈을 미리 뺄 수 있게 한 ‘일부 환매’ 약정 등 사모 대출 펀드가 대출자·투자자를 많이 모을 수 있게 도운 독특한 특성 또한 ‘시한폭탄’ 후보로 꼽힌다. PIK의 경우 대출자가 상환할 돈이 당장은 줄어들 수 있지만 결국 원리금이 계속 증가하는 구조다. 갚을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경우 부도 가능성은 올라간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기준 전체 사모 대출 중 PIK을 사용하는 비율은 12%에 달했다.

돈이 묶인다는 투자자의 불안을 덜어줌으로써 자금 유치를 도운 ‘일부 환매’ 약정은 지금처럼 불안이 확산할 때 일시에 환매 요청이 몰리는 ‘펀드런’을 유발해 펀드를 자금난으로 몰아갈 위험이 있다. 최근 사모 대출 시장의 불안을 키운 이른바 ‘블루아울(Blue Owl) 캐피털 사태’는 이런 위험을 잘 보여준다. 대형 자산운용사인 블루아울은 분기마다 펀드 자산의 5% 한도 내에서 환매가 가능하다고 약속했지만 지난 2월 AI발(發) 소프트웨어 시장 위기론이 번지며 환매 요청이 쇄도하자 “분기별 환매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사모 대출을 취급한 또 다른 자산운용사 ‘아레스’도 비슷한 이유로 25일 펀드 환매를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10억달러 이상 대형 사모 대출 펀드에서 전 분기의 두 배인 약 29억달러의 환매 요청이 몰렸다.

글로벌 금융 위기 같은 충격을 우려할 단계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바비 레디 케임브리지대 법대 교수는 “대부분의 은행은 사모 대출과 관련한 위험을 통제해 왔기 때문에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같은 은행발 충격이 번질 가능성은 작다”고 했다.

◇한국 기관·연금도 수십조 원 투자

인터뷰한 모든 전문가는 더 늦기 전에, 보다 투명한 공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레디 교수는 “미국에선 몇 년 전 증권거래위원회가 사모 대출 운용사의 자산 가치 평가와 관련된 공시를 의무화하려다가 ‘지나친 규제’라는 법원에 의해 무산됐다. 하지만 사모 대출의 규모가 늘어나는 것을 감안할 때 펀드가 보유한 자산의 가치 평가 방식, 해당 자산의 성격, 펀드의 명확한 구조 등에 대한 투명한 공시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체 투자의 일환으로 사모 대출 투자를 늘려온 한국의 연·기금 등도 관련 위험을 면밀히 분석 중이라고 알려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증권사를 통해 판매된 해외 사모 대출 펀드 잔액은 약 17조원이다. 국민연금 및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도 각각 약 11조원, 6조원을 해외 사모 대출에 투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