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서 전기차까지 승승장구… 중국의 ‘볼트 러시’

“우리의 ‘초고속 충전소(Super Charging Station)’는 태양광발전과 전기차 충전 서비스, 실시간 배터리 진단 기능을 하나로 결합한 스마트 충전 시설입니다. 미래 도시의 에너지 저장·충전 인프라의 핵심 모델로 보시면 됩니다.”

지난달 25일 중국 푸젠성 푸저우시에 있는 네뷸라 일렉트로닉스(星云股份). 현장 안내를 맡은 직원은 이 회사의 미래형 전기차 충전소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충전소 지붕에는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자체 발전을 하고, 이 전력은 에너지 저장 장치(ESS)에 저장됐다가 전기차 급속 충전에 활용된다. 여기에 이 회사의 자랑이 하나 더 추가된다. 전기차를 초고속 충전하는 동안 충전기 내부 인공지능(AI) 분석 장치가 전기차용 배터리의 온도와 전압, 충전 효율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배터리 수명과 노화 정도까지 진단하는 것이다. 회사 측은 “만약 전기차 배터리에 이상이 감지되면 운전자의 스마트폰 앱으로 곧바로 알림이 전송된다”고 설명했다. 미래형이라고는 하지만, 이 충전소는 이미 2~3년 전부터 푸젠성을 비롯한 중국 전역에 보급 중인 현실화된 기술이다.

지난달 25일 WEEKLY BIZ가 둘러본 중국 푸젠성 네뷸라 일렉트로닉스의 ‘초고속 충전소’. 직원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의 전기차를 초고속 충전시키면서 배터리 상태를 함께 진단받는다. /김성모 기자

중국의 ‘볼트 러시(Volt Rush)’에 가속이 붙고 있다. 중국은 전기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여기고 충전용 배터리(이차전지) 기술뿐 아니라 전기차 생산·공급 확대, 충전 시스템 등까지 전기 관련 산업이 수직 계열화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또 풍부한 자연 자원을 활용한 친환경 전력 생산에도 독보적 위치로 올라선 상태다. WEEKLY BIZ는 지난달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중국 신화통신사 초청으로 중국 푸젠성을 방문해 첨단 산업 현장을 둘러봤다.

◇배터리의 성(省), 푸젠성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만과 마주한 푸젠성은 ‘배터리의 성’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니다. 도로에는 배터리로 달리는 전기차가 즐비하고, 한때 매연을 뿜는 오토바이가 떼를 지었던 도심엔 이제 전기 자전거가 현지 시민들의 발이 됐다. 지난해 푸젠성의 신차 가운데 전기차 등 신에너지차(NEV) 비율은 48.2%(지난해 9월 기준)에 달했다. 한국의 전기차 등록 비율 18.4%(지난 8월 기준,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 집계)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실제로 WEEKLY BIZ가 찾은 네뷸라 일렉트로닉스의 전기차 충전소에도 비야디(BYD), 니오, 샤오펑 등 각종 중국산 전기차가 줄줄이 주차돼 충전하는 모습이었다.

여기에 최근 기술 발전으로 배터리 화재 등 안전성 문제가 개선되면서 전기차 보급은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네뷸라 일렉트로닉스는 스마트 충전소 보급은 물론 배터리 테스트 장비 등과 같은 각종 검사 장비도 제공한다. 이 회사 류전 마케팅부문장은 “우리의 검사 장비를 활용하면 몇 분 안에 어떤 이상이 있는지 알려주니 배터리 안전성이 그만큼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푸젠성이 ‘배터리의 성’으로 여겨지는 건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 업체 CATL의 본거지라는 이유가 크다. CATL은 전 세계 이차전지 시장에서 점유율 3분의 1 이상(36.8%·올해 1~8월 누적 기준)인 배터리 업계 강자다. 중국 내 최대 경쟁사인 비야디 점유율(18.0%)과 견주어 두 배 이상 높다. 해외 시장에선 LG에너지솔루션 등 한국 배터리 업체의 강력한 경쟁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배터리 강자가 성 안에 있으니 네뷸라 일렉트로닉스와 같은 배터리 검사 및 제조 설루션 업체의 최대 고객도 CATL이다. CATL 본사가 있는 푸젠성 남부 닝더 주변엔 배터리 관련 기업이 우후죽순 들어서며 거대한 배터리 클러스터까지 조성됐다. 이곳엔 리튬이온 배터리에 들어가는 양극재·음극재·분리막·전해액 등 배터리 핵심 소재 및 부품 기업이 들어선 것은 물론 배터리팩 제조와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까지 몰려들었다. 이는 성 정부 차원의 전폭적 지원도 뒷받침된 결과이기도 하다. 푸젠성 발전개혁위원회는 2022년 ‘리튬전지 신에너지 신소재 산업 고품질 발전을 가속화하는 시행 의견’에서 “2025년까지 리튬 배터리 생산능력은 500GWh로 키우고, 배터리 관련 산업의 생산 가치는 6000억위안(약 120조원)을 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목표는 현실이 되고 있었다.

◇‘레드 테크’의 연쇄 효과

특히 중국은 10년 가까이 전기차 세계 최대 시장으로 군림하며 관련 산업이 연계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중국식 최첨단 기술, 이른바 ‘레드 테크’의 연쇄적 파급 효과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한다. 전기차가 시장에서 주류로 자리매김하면서 운전자들은 더 긴 주행거리를 갖춘 차량에 관심을 보이게 됐고, 더 편하게 충전할 수 있는 촘촘한 충전 인프라도 갖춰야 했다. 그 결과, 중국의 전기차 인프라는 이미 다른 국가와 차원이 다르게 깔리고 있다. 중국 내 충전기 시설은 이미 992만기 수준(지난 5월 말 현재·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이며, 올해 베이징에만 5분 만에 약 400㎞ 주행이 가능하도록 충전하는 초고속 충전소가 1000개쯤 건설될 계획이란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 의회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엔 충전기 시설이 20만7227기(지난 1월 기준)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그래픽=김성규

충전 인프라뿐이 아니다. 전기차 시장 확대는 배터리 기술 진화로 직결됐다. SNE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리튬이온 전지의 전체 수요는 1320GWh였는데, 이 가운데 전기차용이 898GWh로 68.0%를 차지하고, 나머지를 ESS용(23.3%)과 IT 기기용(8.7%)이 나눠 가졌다. 전기차 시장이 큰 곳일수록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품질이 뛰어나면서 가격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찾게 되는 구조다. 로버트 앳킨슨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싱크탱크 설립자는 뉴스위크에 “중국의 전기차 성장세가 이어지며 관련 기술 노하우가 다른 차세대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이는 한 산업의 성장이 다른 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누적적 인과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스필오버(spillover·낙수 효과)’다.

김용신 인하대 중국학연구소장은 “특히 중국은 미국과 경쟁하면서 일부 부품 접근이 제한되자 오히려 자국 내 밸류체인(생산부터 유통까지 산업 전반의 구성)이 강화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일부 업체에선 배터리 원료인) 리튬을 채광·정련하는 데에서부터 배터리 제조와 전기차 생산에 이르기까지 수직 계열화가 중국 내부에서 완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에선 막대한 전기차 수요를 바탕으로 전기차 배터리 신기술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지난 16일 중국중앙TV(CCTV)와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연구진이 전기차 주행거리를 두 배 이상 늘리면서 안전성까지 끌어올린 전고체 배터리 연구 성과를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고체 전해질을 쓰는 전고체 배터리는 전기차 주행거리를 1000㎞ 이상으로 늘려줄 ‘꿈의 배터리’로 통한다. 중국 매체들은 이번 연구 성과가 전고체 배터리를 상용화 단계로 끌어올릴 결정적 진전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바람 에너지의 전초기지

중국 ‘볼트 러시’의 한 축이 전기차·배터리라면, 또 다른 축은 신재생에너지다. 중국은 환경오염 해소와 에너지 안보 강화, 미래 산업 지배력 강화 등 복합적 이유로 일찍이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생산에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중국 푸젠성 푸칭시에 있는 ‘푸젠 싼샤 해상 풍력 국제 산업 단지’. 중국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대규모 풍력 단지 가운데 하나다. 이곳에선 풍력으로 전력을 생산할 뿐 아니라 풍력 기도 자체적으로 만들어낸다. 공장 앞 부지엔 풍력 발전기 조립에 쓰일 블레이드(날개)가 여러 대 놓여 있다. /김성모 기자

지난달 25일 오전 WEEKLY BIZ가 찾은 중국 푸젠성 푸칭시 ‘푸젠 싼샤 해상 풍력 국제 산업 단지’. 이곳은 중국에서도 최초로 지어진 대규모 풍력 단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단지 중앙 제어 센터 건물 13층 발코니에 나가 보니 마치 선풍기를 코앞에서 튼 듯한 강바람이 계속 불어온다. “연중 바람이 많은 곳이지요.” 현지 관계자의 설명이 이어진다. 눈앞엔 ‘거인들의 바람개비’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풍력 시설이 해안가를 따라 수십 대 도열해 장관을 이룬다.

바람 많은 천혜의 조건을 바탕으로 중국은 이곳에 전체 66만㎡(약 20만평) 규모에 달하는 대규모 풍력 산업 단지를 조성했다. 단지의 특징은 단순 풍력발전소가 아니라 풍력 설비를 원스톱으로 생산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골드윈드 테크놀로지’ ‘둥팡전력’ ‘중국수전 4국’ 등 주요 기업이 발전 설비 부품을 만들어 레고 블록처럼 조립해 초대형 풍력발전 설비를 뚝딱 완성한다. 실제로 현장에서 둘러보니 공장 앞 너른 부지마다 블레이드(날개), 터빈 등 풍력발전 핵심 부품들이 수십 대씩 나란히 놓여 조립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산업단지 측은 이 단지에서만 연간 300만kW 규모의 풍력 터빈을 생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단지에서 만들어 내는 터빈은 그야말로 매머드급이다. 출력이 6.7MW에서 최대 26MW에 이르는 초대형 해상 풍력 터빈을 만들어 낸다는 설명이다. 26MW급 해상 풍력 터빈 1기는 대략 3만가구(3인 가구 기준)가 1년 동안 쓸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정도다.

산업단지 측은 “산업단지가 생산한 풍력발전 설비는 중국 연안의 해상 풍력발전 프로젝트에 널리 쓰일 뿐 아니라 튀르키예·에티오피아·탄자니아와 일부 유럽 국가 등 ‘일대일로’ 참여국에도 판매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은 이미 전 세계 풍력발전 시장에서 압도적인 선두 주자로 올라선 상태다. 세계풍력에너지협의회(GWEC)에 따르면, 중국은 7년 연속 신규 해상 풍력 설비 설치량에서 세계 1위(2024년 기준, 50.5%)이고, 누적 해상 풍력 설비 설치량도 전 세계 절반(50.3%)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전기 국가’

이처럼 중국이 ‘기계 동력의 전기화’와 ‘신재생에너지 기반의 전기 생산’이란 두 축으로 빠르게 진화하자, 이를 ‘전기 국가(electrostate)’로 규정하는 분석도 늘고 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최근 보고서 ‘전기 국가가 되는 법(How to Be an Electrostate)’에서 중국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올해의 지정학적 유행어는 아마도 ‘전기 국가’일 것이다. 점점 더 많은 분석가가 중국을 세계 최초의 전기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은 신재생에너지 기술의 최대 수출국일 뿐 아니라 화석연료 의존 기계를 전기 동력으로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보고서 공동 저자인 노아 고든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연구원 등은 이 보고서에서 “중국의 신재생에너지 생산 역량은 산업용 로봇, 반도체, 스마트폰 등 다른 분야의 경쟁력까지 끌어올리고 있다”며 “이를 ‘퍼즐 맞추기 산업 정책’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이 산업 정책은 한 산업에서 확보한 기술·자본·공급망을 다른 산업과 맞물리게 해 전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전략을 뜻한다.

미국의 에너지 연구 기관 로키마운틴연구소(RMI) 역시 ‘여섯 개의 차트로 본 정상 경쟁’이란 제목의 분석 글에서 ‘중국은 세계 최초의 주요 전기 국가’란 표현을 쓰며, “중국이 신재생에너지 기술, 전력 전환, 전기화 측면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했다. 호주의 싱크탱크 클라이밋에너지파이낸스(CEF)는 보고서 ‘중국의 전기 국가 부상, 세계에 미치는 심대한 영향’ 역시 “중국은 신재생에너지 수출, 높은 전기화율, 제조업 지배력을 바탕으로 중요한 전기 국가로 자리매김했다”고 평했다.

실제로 중국은 풍력은 물론 태양광 패널에서도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IEA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 태양광 패널 생산량의 80% 이상(IEA·2023년 기준)이 중국에서 나왔고, 배터리 가운데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도 70~75%를 차지한다. 전기차 생산 역시 2024년 기준 전 세계 60~65%가 중국에서 이뤄진다(IEA·2024년 기준)는 분석이다. 수출 실적으로 따져도 지난해 중국의 전기차 수출은 약 500만대로 세계 1위(중국자동차공업협회), 태양광 패널 수출은 세계 태양광 모듈 수출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중국은 대규모 보조금 정책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키웠고,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면서 ‘팔로어’를 넘어 ‘개척자’로 올라섰다”며 “미국·한국 기득권층 반대로 친환경 정책 추진이 흔들리기도 하는데 중국은 정부 의지로 밀어붙여 지금의 성과를 이룬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이현익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국은 후진타오 전 주석이 2001년 비공산당 출신 전문가 완강(아우디 엔지니어 출신)을 ‘863계획’ 전기차 분야 총괄로 발탁하며 세계에서 가장 먼저 ‘볼트 러시 시대’를 열었다”며 “20여 년간 일관된 기술 정책을 밀어붙인 리더십이 중국을 ‘전기 국가’로 도약시킨 본질”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