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의균

“다음 중 합계출산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멕시코·튀니지·튀르키예·이란 그리고 미국 중에요. 맞혀 보시죠.” 헤수스 페르난데스비야베르데(Fernandez-Villaverde)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난 21일 서울 코엑스에서 만났을 때 그는 이런 질문으로 대화를 열었다. 이슬람 국가인 튀르키예·이란·튀니지, 가톨릭 인구가 많고 가족 중심적인 멕시코의 출산율이 더 높으리라고 생각했다. 정답은 의외로 ‘선진국 대표’ 미국(1.60)이었다. 다른 나라의 출산율은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보다 훨씬 높았지만 지난 10년 사이 일제히 급락해 미국 아래로 내려갔다. ‘합계출산율’은 특정 시점 기준으로 여성이 평생 낳으리라고 예상되는 출생아 수를 뜻한다. 인구의 현상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출산율(대체출산율)은 선진국 기준 2.1명, 전 세계 기준 2.2명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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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고(지난해 0.75명) 하락 속도도 가장 빠른 나라로 꼽힌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년 동안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작년에만 15조원을 썼다. 그런데 출산율 하락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인류가 맞닥뜨린 전 지구적인 문제라면? 육아 수당이나 세제 혜택을 아무리 많이 투입해도 출산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파격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뜻 아닐까.

헤수스 페르난데스비야베르데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학자 대회에서 기조 강연을 한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한때 선진국의 문제로 여겨졌던 저출산은 이제 중진국, 후진국 모두를 덮친 전지구적 현상이 됐다. 지금 인류가 해결해야 하는 가장 절박한 문제가 저출산"이라고 했다. /박성원 기자

지난 18~22일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학자 대회(World Congress of the Econometric Society·직역하면 ‘계량경제학회 세계 대회’) 기조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페르난데스비야베르데 교수는 동시다발적으로 낮아지는 출산율과 이로 인한 경제·재정의 지속 가능성 문제를 가장 치열하고 치밀하게 제기해 온 경제학자로 꼽힌다. 그가 2021·2023년 전미경제연구소(NBER) 등을 통해 발표한 저출산 관련 논문은 학계와 주요 언론이 ‘저출산은 일부 선진국이 아닌 전 지구적 문제’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한 결정적 계기로 여겨진다.

그는 WEEKLY BIZ 인터뷰에서 “지금 인류가 당면한 문제 중 저출산만큼 엄중한 문제는 없다. 여전히 원인과 해결책을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 전 지구적 저출산 문제는 해법을 어느 정도 도출한 기후변화보다 인류에 훨씬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인터뷰는 페르난데스비야베르데 교수와 여러 연구를 함께 수행한 송동호 존스홉킨스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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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선진국만의 문제 아니다

-저출산에 대해 오해가 있다면.

“출산율의 급격한 하락이 선진국만의 문제라 여기는 이가 많다. 그러나 지금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현상이 중소득, 심지어 저소득 국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예를 들어, 2023년 멕시코의 출산율은 1.60명으로 미국(2023년 기준 1.63명) 아래로 내려갔다. 수도인 멕시코시티를 보면 더욱 놀랍다. 출산율이 0.95명밖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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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 출산율 하락은 언제 발생한 일인가.

“전 세계의 출산율이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한 시점은 1970년대다. 당시엔 경제 발전으로 인한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상승 등)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겼고 변화는 점진적이었다. 그런데 2014년 이후 이 추세가 갑자기 빨라지면서 출산율이 가파르게 하락했다.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다. 만약 10년 전쯤 누군가 ‘멕시코의 출산율이 지금(약 2.2명)보다 내려갈까요’라고 물었다면 나는 ‘아마도 그렇다’고 답하긴 했겠지만, ‘멕시코의 출산율이 1.6명까지 내려갈까요’라고 물었다면 ‘그 정도는 아니다’라고 펄쩍 뛰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출산율 하락 속도가 느려질 기미가 없다는 점이 나는 매우 놀랍다.”

-저개발국 중에서 출산율 하락이 두드러지는 나라는.

“예상치 못한 국가가 많다. 지금 가장 빠른 속도로 출산율이 내려가는 나라 중 하나가 이집트다. 출산율이 불과 10년 사이에 4명 정도에서 2.4~2.5명으로 급락했다. 2028년 정도면 대체출산율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이집트는 국민의 90%가 이슬람교도인 가난한 나라다. 여성의 취업률과 교육 수준이 낮으면서 역사적으로도 출산율이 매우 높은 대표적인 나라였다. 종전 가설로는 이집트가 불과 10년 사이 이토록 가파른 출산율 하락을 겪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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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여성의 취업률은 15%, 대학 진학 비율은 38%다. 이런 나라에서 출산율이 10년 사이 급락했다는 사실은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가 출산율 하락을 유발했다’는 종전 통념을 뒤엎는다. 튀르키예·이란 등도 최근 들어 출산율이 크게 내려가며 마찬가지 현상을 겪고 있다. 페르난데스비야베르데 교수는 “이란의 출산율은 미국 로스앤젤레스보다도 낮다. 과거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선진국·후진국 할 것 없이 일제히 출산율이 내려가면서 유엔은 전 세계 출산율이 2031년쯤 인구의 ‘현상 유지’가 가능한 2.2명 선 아래로 내려가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연애·결혼 대신 소셜미디어에 빠진 인류

경제학자와 정부 당국자들은 저개발국까지 번지는 저출산의 원인을 알아내려 애쓰고 있다. 아직 명확한 ‘정답’이 나오진 않았지만 페르난데스비야베르데 교수는 세 가지 정도로 원인을 추리는 중이라고 했다. 결혼·출산에 엄두를 못 내게 만드는 가파른 집값 상승, 부모에게 ‘악몽’에 가까워진 과도한 교육 경쟁, 그리고 소셜미디어의 확산이다. 그는 “아직 연구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이 중 소셜미디어는 이란·이집트같이, 다른 요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국가들의 출산율 하락과 연관되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고 했다. 이 국가들의 출산율이 급격히 내려가기 시작한 2014~2015년은 트위터(현재 X)·페이스북에 이어 인스타그램·틱톡 같은 다양한 소셜미디어의 사용자가 급격히 불어난 시기와 맞물린다.

-소셜미디어와 출산율이 무슨 상관인가.

“킹스칼리지 런던의 앨리스 에번스 교수가 전 세계 여성들을 만나고 다니며 이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소셜미디어가 저개발국 여성들에게 이전엔 생각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규범을 제시했다고 본다. 이집트 여성들이 취업을 안 했거나 고등교육을 받지 않았다 하더라도, 소셜미디어에서 다른 나라 여성들의 생활상을 보고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느끼며 결혼·출산이 의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는 멕시코다. 멕시코는 가정 폭력 문제가 심각하기로 악명이 높은데 과거 여성들은 이를 참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소셜미디어는 이런 여성들에게 ‘그렇게 살 이유가 없다’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원치 않는 가정 생활을 피하도록 만들 수 있다.”

그가 언급한 에번스 교수의 연구는 글로벌 출산율의 급락 원인 중 하나로 스마트폰을 지목한다. 스마트폰을 통해 디지털 콘텐츠에 과몰입하면서 연애 같은 현실 속 상호작용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결혼·출산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에번스 교수는 지난해 11월 자신의 블로그에 “음식 배달 앱과 넷플릭스, 화상 통화 모임을 할 수 있고 스마트폰이 대면 관계를 대체할 끊임없는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세상에서 번거롭게 외출하거나 사교에 공을 들이려는 사람은 줄어든다. 설문 결과 미국 남성 65%는 ‘나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고 답했고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초반생)의 28%는 ‘지난 한 주 아무와도 (오프라인에서) 소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고립 심화 현상을 드러내는 증거는 많다”고 했다.

그래픽=이진영

-집값도 저출산에 영향을 주고 있나.

“그렇다. 부동산 가격 관련 데이터는 많기 때문에 출산율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검증이 잘되어 있는 편이다. 미국을 보면 집값이 많이 오른 뉴욕·캘리포니아의 출산율이 그러지 않은 텍사스·플로리다보다 훨씬 많이 하락했다. 브라질에는 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다. 브라질 정부는 저렴한 공공 주택을 추첨 방식으로 공급하는데, 이에 당첨된 사람들은 아이를 평균 0.5명 더 낳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는 매우 큰 차이다. 출산율이 빠른 속도로 하락한 기간이 전 세계적으로 주택 가격이 급등한 시기와 일치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기간 집값 급등은 (코로나 부양책 등으로) 금리가 매우 낮아진 동시에 세계 각지에서 건축 규제가 강화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좋은 집을 사기 수월해지면 출산율 반등에 도움이 된다는 뜻인가.

“그렇다. 부동산 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정부가 사회의 문화나 규범에 대해선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반면, 주택 가격에 대해선 많은 정책을 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저출산 문제 해소에 많은 돈을 쓴다고 알고 있는데, 부부가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좋은 주택을 많이 만들어 공급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일부에선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면 주택 수요가 감소해 가격이 내려가고, 이로 인해 집을 사기 쉬워져 출산율이 자연스럽게 반등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페르난데스비야베르데 교수는 그러나 “저출산이 앞서 진행된 일본을 보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며 “도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의 집값은 (지방 도시 소멸로) ‘0’으로 향해 가고, 도쿄로는 사람이 더 집중돼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올라가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헤수스 페르난데스비야베르데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왼쪽)와 송동호 존스홉킨스대 교수가 세계 경제학자 대회가 열린 21일 서울 코엑스에서 저출산 심화와 관련한 대담을 하는 모습. /박성원 기자

◇3세대 만에 인구 86%가 사라지는 나라

‘인구는 꼭 늘어야 할까.’ 저출산 문제가 논의될 때 종종 제기되는 의문이다. 페르난데스비야베르데 교수는 “인구 감소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너무나 빠른 속도”라고 말했다. 그는 “살을 뺄 때도 갑자기 수십㎏ 빼면 건강에 나쁘지 않은가”라며 “저출산의 특징은 그 영향이 미래에 필연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5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저출산의 파급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설명하며 한국을 예로 들었다. 한국의 지난해 기준 출산율은 0.75명이었다. 만약 한국이 여성 50명, 남성 50명짜리 나라이고 이들이 모두 결혼해 부부가 50쌍 생긴다고 가정하면, 출산율이 0.75명일 경우 다음 세대의 인구는 38명(반올림)이 된다. 출산율이 그대로라면, 다음 세대 38명(남녀 각각 19명)이 모두 결혼해도 그다음 세대에 14명이 남는다. 1세대 인구가 100명이었다면, 3세대 인구는 14명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이런 충격적 인구 급감 현상을 우리가 아직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평균 수명 증가로 전체 인구 자체가 아직은 늘기 때문이다.

-인구가 줄어들면 무슨 문제가 생기나.

“물론 사람들이 아이를 낳으려는 동기는 다양하다. 아울러 나는 출산율과 관련한 논의는 개인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전제 아래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저출산 문제 해결이 절실한 것은 국가가 유지되려면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 운영엔 사회복지, 건강보험, 국방, 국채 이자 등의 비용이 들어간다. (돈을 벌어 세금을 내서) 이 비용을 댈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인공지능(AI)이나 로봇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페르난데스비야베르데 교수는 저출산이 초래할 ‘나라 살림’ 문제를 설명하며 자신의 모국(母國) 스페인을 예로 들었다. 스페인(출산율 1.12명)의 재정수지는 2007년까지만 해도 국내총생산(GDP)의 0.7%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저출산이 고착되고 고령화가 심각해지면서 정부의 연금·복지 비용 지출이 급증했고 그 결과 지난해 재정 수지가 GDP 대비 3.7% 적자로 돌아섰다. 고령화율(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8.5%에서 21.1%로 급등해 사회보장(연금, 건강보험 등) 지출 증가분이 GDP의 4%에 이르며 생긴 일이다.

-한국은 저출산 악화를 막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들인다. 조언이 있다면.

“돈을 쓰려면 정부가 개선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달성 가능한 현실적 목표를 세워 구체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앞서 말한 주택 보급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또 하나는 교육 문제 해결이다. 교육과정엔 경쟁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엔 적정선이 있다. ‘과도한 교육 경쟁’이란 91.5점을 받은 학생은 서울대에 갈 수 있고 91.4점은 그러지 못하는 식으로, 약간의 교육 차이가 너무 큰 편차를 만들어내는 사회를 뜻한다. 이런 국가에서 교육은 부모에게 ‘악몽’이 된다. 한국의 교육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고 알고 있는데, 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지 정부가 살펴봐야 한다. 일하는 부모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등하교 시간과 출퇴근 시간을 어느 정도 일치시키는 식의 조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출산을 꺼리게 하는 이런 다양한 문제를 약간씩이라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하나하나 따져봐야 한다. 다만 (자녀가 있는 가정에 대한) 무계획적 현금 지급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증명됐다. 돈 낭비라고 단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