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깜짝 놀랄 뉴스가 타전됐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에게 국정 전반의 권한을 이양해 위임통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소식통이 말한 내용이 아니다.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공식 브리핑한 내용이다. ‘위임통치’라는 단어가 명기돼 있다.

오빠가 여동생에게 ‘국정 전반 위임통치’,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김정은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뜻인가. 아니면 평양의 권력 구조에 심각한 변동이라도 생겼다는 뜻인가. 아니면 김정은이 여동생을 앞세워 조선 왕조시대 때 봤던 수렴청정이라도 하고 있다는 뜻일까. 위임통치라는 말을 놓고 설왕설래 해석도 분분했다. 오늘 이런 내용을 일괄적으로 알기 쉽게 정리해 드린다.

첫째 올해 서른여섯 살 김정은 건강은 이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아직도 절대 권력이다.

둘째 오빠와 세 살 터울인 올해 서른세 살 김여정이 ‘2인자 자리’를 확실히 다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3대 세습 북한 체제에서는 2인자를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2인자로 부상할 기미가 보이면 곧바로 강등시키거나 숙청했다. 이들의 고모부 장성택이 숙청당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따라서 김여정의 2인자 등극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김여정의 2인자 역할은 명실상부한 ‘문고리 권력’으로서 국정전반에 대한 중간보고를 받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과거에는 김정은이 만기친람 형으로 모든 것을 관장했지만, 지금은 김여정이 각 기관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중간에서 취합한 다음, 그것을 정리해서 오빠에게 보고하고 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오빠가 지시를 내리면 김여정이 그것을 받아서 각 기관에 지시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1인자보다 더 무서운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도 있는 역할이다.

넷째 김여정이 확실한 2인자 자리를 굳히고 있다는 것은 북한 주민에게서도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최근 북한 주민들은 김여정이 발표한 담화를 줄줄 외울 정도로 학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후계자가 아니면 볼 수 없었던 일들이다. 김여정은 지난6월 대북 전단을 문제 삼아 대남 군사행동을 위협할 때도 "김정은 위원장에게서 부여받은 나의 권한을 행사한다"고 했었다. 이것은 김여정이 2인자의 한계를 넘어서는 ‘큰 자율적 권한’을 갖고 있다는 뜻도 된다. 특히 김여정은 대남 전략, 대미 전략에서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다섯째 그러나 이들 남매는 오빠에게 언제든 건강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사태에 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자식들은 아직 10살이 안 됐다. 따라서 ‘미래의 후계자’는 여동생 김여정으로 봐야 하고, 북한은 사실상 ‘김정은·김여정 남매 간 공동 통치 체제’에 들어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김정은 유고 상태도 아니고, 수렴청정도 아니지만, 위임통치의 통상적 한계를 넘어서는 공동통치라고 봐야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김정은·김여정 남매는 이와 함께 ‘군사 분야’와 ‘경제 분야’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당 지도부에게 일정 정도 분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군사 분야는 최부일 군정지도부장, 그리고 전략무기 개발을 전담하는 이병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 둘에게 맡기고 있다고 한다. 경제 분야는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총리가 권한을 위임 받았다. 즉 ‘군사’는 최부일·이병철, ‘경제’는 박봉주·김덕훈 양쪽으로 갈라치기 위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곱째 이런 군사·경제 부문의 권력 이양은 철저한 ‘책임 회피용’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체제 특성상 어떤 정책 실패도 최고 존엄이나 백두 혈통에게로 그 비난의 화살이 돌아와서는 안 된다. 그날로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조치가 2011년 아버지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시작된 ‘9년간에 걸친 통치 스트레스’를 줄여주자는 목적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예견되는 경제 실패, 그리고 주민들의 불만 고조 현상을 어떻게든 주변으로 돌려보려는 속셈이라고 봐야 한다.

여덟째 북한은 대북제재·코로나·홍수피해라는 3중고(重苦)를 겪고 있다. 올해 상반기 북한·중국 무역 액수는 67%가 급감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올해 북한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8.5%로 전망했다. 보통 정상적인 국가 같으면 벌써 모라토리움 혹은 국가파산 절차에 들어갔어야 할 상태라는 뜻이다. 김정은은 최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6차 전원회의 결정서에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렇게 말했다. "혹독한 대내외 정세가 지속되고 예상치 않았던 도전들이 겹쳤는데 (이에) 맞게 경제 사업을 개선하지 못해 계획됐던 국가 경제의 성장 목표들이 심히 미진하고 인민생활이 뚜렷하게 향상되지 못하는 결과도 빚어졌다." 김정은 입에서 ‘경제 성장이 미진했다’는 실토가 나온 것이다. 이것은 할아버지 김일성이 1993년 7개년 전략 실패를 인정한 이후 2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아홉째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평양주재 스웨덴 대사 요아킴 베리스트룀 씨가 최근 본국으로 철수했다. 북한과 미국을 중재할 수 있는 ‘최후 보루’가 사라진 셈이다. 이로써 평양에 있었던 모든 서방 외교 공관들이 사실상 모두 폐쇄 됐다. 지난2월 독일 대사관, 지난5월 영국 대사관, 그리고 지난3월 프랑스 협력사무소 등이 잇달아 문을 닫은 데 이어 미·북 대화의 중재역할을 하던 스웨덴 대사마저 업무를 중단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코로나 때문이지만, 평양의 외교적 고립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