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백신 개발 자체에 큰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하지만 백신이 공급되기까지는 효능이 있는 백신을 개발하고, 이를 생산하고, 이를 사용하는 세 가지 단계를 모두 완성해야 합니다. 임상 3상이 완료돼 백신이 개발되고 나면 바로 우리가 이를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생산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쏠리게 될 겁니다."

한국에 본부를 둔 최초의 비영리 국제기구인 국제백신연구소(IVI) 제롬 김 사무총장은 Mint 인터뷰에서 "지금 이뤄지고 있는 코로나 백신 개발은 인류가 지금껏 본 적 없는 규모와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예일대 의대를 졸업한 백신 개발 전문가인 그는 유엔개발계획(UNDP) 주도로, 저개발국 백신 보급을 위해 설립된 IVI 3대 사무총장으로 2015년부터 일하고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이승만 박사 등과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김현구 선생의 손자로, 미 국방부에서 HIV 백신 개발 등을 주도한 백신 권위자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 있는 IVI 사무실에서 최근 그를 만났다.

◇"백신 효율적 생산, 한국 기업이 앞서간다"

―코로나 백신 개발 시점은 언제가 될까.
"WHO(세계보건기구) 등이 참여하는 글로벌 협력을 통한 백신 개발 프로그램인 COVAX(국제코로나 백신 접근)의 목표는 내년 말까지 백신 20억병을 생산하는 것이다. 20억병은 세계 인구의 20%에 코로나를 접종할 수 있는 양으로, 의료진 및 고령자 등 코로나 고위험군이 우선 접종 대상이 된다." (현재 6개 팀이 백신 개발의 마지막 단계인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며 이중 미국 모더나, 영국계 아스트라제네카 등이 COVAX 프로그램이 참여 중이다. 한편 러시아는 3상을 완료하진 않은 상태에서 코로나 백신을 최근 승인했다.)

―모더나는 최근 백신 가격을 한 회 약 50달러 정도로 책정하겠다고 했다가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적정가'라는 게 있나.
"COVAX는 백신 가격을 '상식적인 선'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백신 가격의 '상식'을 측정하기가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더나가 생산하는 백신은 mRNA라는 방식인데, 지금까지 이 방식으로 개발돼 상용화한 백신이 없다. 백신 가격은 이를 대량 생산할 때 들어가는, 비슷한 유형의 과거 백신을 토대로 산정이 되기 마련이나 모더나 백신 같은 경우는 그 전례가 없으니 가격을 측정하기가 여의치 않다. 백신은 통상 소규모로 생산할 땐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생산량이 커질수록 단위당 가격이 내려간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코로나 백신이 일단 개발되면, 생산은 누가 맡을까.
"대형 바이오회사들은 직접 생산을 할 수도 있지만, 위탁 생산도 많이 하게 될 전망이다. 효율적이면서도 낮은 비용으로 백신 생산을 할 수 있는 회사가 경쟁력이 있다. 비용을 낮추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인건비가 싼 나라로 가는 것이다. 인도가 대표적인 예다. (인도의 혈청연구소는 아스트라제네카 등 주요 백신 개발사와 속속 생산 계약을 맺고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첨단 기술을 통해 생산 과정·시설을 효율화하는 것인데 한국이 이 부분에서 앞서간다. 한국은 품질 좋은 백신을 비교적 저비용으로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개발뿐 아니라 위탁 생산도 중요하단 뜻인가.
"그렇다. 코로나 백신에서 생산은 종종 간과되는 분야이기도 한데, 한국엔 그 생산을 (위탁 생산이더라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업들이 있다. 예를 들어 삼성바이오로직스 최고경영자(CEO·김태한)를 보면 의사가 아니다. 화학 전공으로 화학 산업을 잘 이해하며, 원재료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완제품으로 전환해 시장에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전문가다. 이런 회사를 세계 백신 개발사들은 찾고 있다. 이미 아스트라제네카와 노바백스가 한국의 SK바이오사이언스와 생산 계약을 체결했다." (러시아 백신 개발을 주도한 러시아 직접투자펀드 키릴 드미트리예프 CEO는 최근 Mint 인터뷰 때 "한국 메이저 회사 두 곳과 백신 생산을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시장 무시하는 수준의 낮은 백신 가격은 반대"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바이오 연구소에서 백신을 실험 중인 모습.



김 사무총장은 "미국 정부만 백신 개발사 한 개에 수억도 아닌,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는 등 어마어마한 돈이 코로나 백신 개발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며 "매일 하루에 약 1000명씩 코로나 사망자가 발생하는 미국은 백신 개발과 동시에 접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막대한 역량을 쏟아붓는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이미 백신 회사 3곳에 6억개 넘는 백신을 선주문한 상태다. 이 백신들이 모두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개발이 완료되는 즉시 미국 인구 두 배에 달하는 백신을 확보할 수 있게 해둔 것이다.

―돈 많은 나라들이 백신을 선점해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중국 등도 백신 선주문을 발표하면서 최근엔 '백신 국가주의'에 관한 논란도 커지는 듯하다. 부자 나라들이 백신을 독점하지 않고 백신이 공정하게 분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WHO·IVI 등 국제기구의 역할이 될 것이다. 코로나는 전염력이 강해 선진국에서만 감염을 줄인다고 해서 피해가 줄어들지 않으며, 저개발국에도 충분한 백신이 공급돼야만 효율적인 방역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적정한 백신 가격은 얼마일까.
"백신 가격은 나라별로 다르게 책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거의 모든 백신은 나라마다 다른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같은 백신이 미국에선 한 번 접종에 200달러고, 유럽에서 50달러, 저개발국에서 2달러를 받기도 한다. COVAX 주도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우 저개발국엔 굉장히 낮은 가격으로 보급될 것이다."

―백신 개발사들이 '가격을 낮추라'는 압박을 받아, 손해를 보며 백신을 파는 일이 생기진 않을까.
"나는 선진국들이 비용을 대서 저개발국에 백신을 무료, 혹은 아주 싸게 지원하는 방안을 지지한다. 다만 백신 가격 자체를 너무 낮게 책정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코로나 백신 가격을 과도하게 낮춰 이를 개발한 회사가 손해를 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다음 팬데믹 때 아무도 백신을 만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방역은 중요하지만 시장 논리를 너무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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