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에겐 어린 시절 소풍 경험이 없었다. 입학식과 수학여행의 추억, 그 흔한 MT 경험도 없다. 종목은 다르지만, 유소년 시절부터 쳇바퀴 돌듯 고된 훈련과 대회 출전으로 꽉 짜인 삶을 살아온 여자들이 한번 제대로 놀아보자고 뭉쳤다.

E채널의 새 예능 '노는 언니'에는 한국 체육을 대표하는 '아마조네스' 군단이 출연한다. 박세리(골프), 남현희(펜싱), 곽민정(피겨스케이팅), 정유인(수영), 이재영·다영(배구) 등이 고된 유소년 시절을 보상받겠다는 듯, 맘껏 노는 모습을 보여준다.

‘노는 언니’ 출연자 4명이 각자 자신의 종목을 연상시키는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수영 선수 정유인, 골프 여제 박세리, 펜싱 여왕 남현희, 피겨 요정 곽민정.

코치로 활동 중인 '피겨 요정' 곽민정(26)은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놀러 가 본 적이 없다"면서 "녹화 전날 캠프파이어 할 생각에 설렜다"고 했다. 방송에서 처음 본 사이지만,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처럼 화학작용이 일어났다. 훈련에 참가한 현역 이재영·다영(24·흥국생명) 쌍둥이 자매가 빠진 채 진행된 3일 온라인 제작 발표회에서도 서로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여주며 깔깔 수다를 떨었다.

맏언니 박세리(43)는 "선수들 경험은 비슷하다. 항상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훈련했기 때문에 늦잠을 자본 적도 없다. 그런 공통점이 우리를 쉽게 뭉치게 했다"며 웃었다. 배우 문근영 뺨치는 얼굴이지만, 떡 벌어진 어깨와 이두박근 때문에 '여자 마동석'으로 통하는 정유인(26·경북도청)은 "옆집 언니들 같다. 털털하고 힘든 점도 알고…. 서로 종목이 달라서 경쟁할 필요도 없고, 마음이 참 편하다"고 했다.

그래도 카메라가 돌면 스포츠맨 특유의 '열심 유전자'가 작동했다. 은퇴 후 펜싱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남현희(38)는 "녹화하면서 '우리가 놀러 왔지 운동하러 왔냐' 이러다가도 하나같이 열심히 하고 있더라"면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근성은 결국 똑같더라"고 했다.

남성 '태릉인'(국가대표)에게만 허용됐던 TV 예능이 '금녀(禁女)의 문'을 연 것도 주목거리다. 박세리는 "남자 선수 출신 방송인은 많지만, 여성은 가끔 게스트로 나올 뿐 고정은 없었다"면서 "우리 프로는 여성 체육인들이 주인공이고 연예인을 게스트로 불러 촬영한다"고 했다.

카메라 앞에서 망가져도 상관없다. 남현희는 "올림픽 경기가 끝나고 투구를 벗을 때 '아, 땀범벅인 내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겠구나' 걱정한 적도 있는데 여기선 노래하고 춤추고 소리 지르고 더 망가지는 모습이 나간다"고 했다. 정유인은 "수영 선수들은요, 레인에서 선수 소개할 때 카메라가 바로 코앞에 있다 보니 '아, 내 생얼, 콧구멍 크게 보이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까지 한다"면서 "덕분에 카메라에 대한 공포심은 없다"고 했다.

박세리는 "여성 스포츠인들이 좀 더 알려지면 좋겠다"고 했다. 대전시체육회 부회장이기도 한 그는 "여자 축구, 육상 등 체육계 처지에선 방송을 통해 국민이 더 다양한 종목에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