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정권의 명운을 걸고 세 가지 당면 과제를 풀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매우 폭발력이 강한 세 가지 어젠다가 삼각파도처럼 청와대로 몰려오고 있다. 이제 얼렁뚱땅 각료들이나 참모들 뒤에 숨어 있을 겨를이 없다. 지시는 대통령이 내리고 책임은 참모가 지는 그런 구도를 계속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세 가지 당면 과제는 첫째 ‘부동산 안정’, 둘째 ‘대북 정책 재가동’, 셋째 ‘검찰 진화(鎭火)’다. 부동산 안정 문제는 지금까지 대통령이 김현미 국토부 장관 뒤에 숨어 있었다. 대북 정책은 강경화·정의용 외교안보 라인 뒤에 대통령이 숨어 있었다. 검찰 개혁 문제는 추미애 법무장관 뒤에 대통령이 숨어 있었다. 이제 그럴 수 있는 시간은 지나버렸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야 한다.

먼저 부동산 문제를 보겠다. 문 대통령은 지난2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긴급 현안 보고를 들었다. 부동산은 문재인 정권에게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6·17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지만 아파트 값은 그런 대책이 나올 때마다 마치 새로운 날개를 하나씩 더 단 것처럼 치솟았다. 집값은 잡히지 않고 내 집 마련 문턱만 자꾸 높아졌다. 게다가 청와대와 정부 고위공직자, 그리고 여권 의원들 상당수가 아파트를 여러 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반포 아파트를 판다고 했다가 청주 아파트를 파는 것으로 고쳐서 발표하는 바람에 빈축을 샀다.

정권이 무너지는 것은 하루아침에 벌어질 수도 있다.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은 "고강도 대책에도 불구하고 3년 간 폭등하자 ‘부동산 불패’ 학습효과만 키웠다"고 했다. "신용대출에 부모 찬스까지 동원하면서 더 늦기 전에 뛰어들려고 하고 있으며 공급 확대는 먼 얘기로 들린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집 팔라고 하더니…양도세 올린다는 정부"라고 꼬집었다. 민주당과 정부가 종부세와 양도세를 동시에 인상하거나 감면 범위를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이것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다. 보유세를 올리려거든 거래세를 대폭 낮춰주든지, 서울·수도권 공급량을 획기적으로 늘려주든지 해야 하는데 정부·여당은 오로지 부동산 문제를 핑계로 세수입(稅收入)을 확대하는 것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투기 세력을 잡겠다고 했지만 결과는 엉뚱하게 35세~45세 사이 실수요자의 숨통만 조여 놓고 말았다. 문재인 정권은 부동산 문제에서 지지층의 둑이 터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몰려 있다. 대선은 다가오고 있는데 정권 재창출의 꿈은 부동산 문제에서 좌절될 수도 있다. 그 뒤에 다가올 역풍은 생각만 해도 끔찍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더 이상 김현미 국토부장관 뒤에 숨을 수 없고 이제 부동산 대책 전면에 나서야할 때라고 본다.

문 대통령에게 둘째 당면 과제는 대북 정책 재가동이다. 지난3일 문 대통령은 박지원 국정원장, 서훈 안보실장, 임종석·정의용 안보특보, 이인영 통일장관 인사를 단행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 정권이 갖고 있는 인재를 풀가동했다고 자임하면서 남북관계 역량, 통일운동 역량을 총결집했다고 자신하고 있을 것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전에 미·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겠다는 의지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외교안보 라인을 교체한 다음날인 지난4일 문 대통령은 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으로부터 ‘새로운 메시지’를 받아들게 됐다. 최선희 제1부부상은 그제 담화에서 "조미 대화를 정치적 위기를 다뤄 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최선희 담화는 미·북 정상회담을 일축하는 듯 했지만 사실은 역설적으로 관심을 드러내는 측면도 있다. 동아일보 사설은 오늘 이렇게 썼다.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 남측의 새 대북 라인을 향해 먼저 미국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양보안을 받아오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문제는 우리 쪽 전략이다. 새로운 안보라인에서는 벌써부터 "때로 담대하게 움직이겠다"느니 "다시 평화의 문을 열겠다"느니 성마른 다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는 "대통령을 위한 충성"이라는 말도 꺼냈다.

이른바 ‘스몰딜 + 알파’ 아이디어도 거론되고 있는 것 같다. 영변 핵시설과 일부 추가 비핵화를 댓가로 대북제재를 상당 부분 풀어주자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지극히 염려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는 언제부턴지 ‘북한 비핵화’라는 말자체가 사라지고 없다. ‘완전한 비핵화’는 그런 말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안보라인은 혹시 북한을 편들어주는 방식으로 올가을 깜짝 10월 쇼, 미국 대선 직전의 ‘옥토버 서프라이즈’로 트럼프·김정은 흥정 붙이기에만 열을 올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것이다.

세 번째 문재인 대통령의 과제는 ‘검찰 안정화’다. 매일 매일 새로운 뉴스가 터져 나오고 있는데 문 대통령은 더 이상 추미애 법무장관 뒤에 숨어 있으면 안 된다. 문 대통령은 "마음의 빚"이 있는 조국 전 법무장관, 호형호제하는 "30년 지기"라는 송철호 울산시장, 자신을 형이라고 불렀다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이 세 사람에 대한 윤석열 검찰의 수사를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문 대통령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고사 성어를 기억해야 한다. ‘조국, 송철호, 유재수’, 이 세 사람을 잘라낼 수 있어야 정권이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7월에 출범하는 공수처를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입맛대로 끌고 갈 경우, 그래서 공수처를 통해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건드릴 경우, 그에 앞서 추미애 장관을 앞에 내세워 윤석열 총장을 꽁꽁 묶어놓거나 내쫓아버릴 경우 감당 못할 엄청난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