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가 현안을 놓고 이견을 노출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국가 간 협의 과정에서 의견 차이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최근 양국 고위 당국자들 사이에서 '돌출 발언'이 이어지는 등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이수혁 주미(駐美) 대사의 발언과 이에 대한 미 국무부의 반박성 논평도 양국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국무부는 5일(현지 시각) '한국은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나라'라는 이 대사의 발언에 대해 "한국은 이미 어느 편에 설지 결정했다"고 반박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미국의 소리(VOA) 논평 요청에 "한국은 수십 년 전 권위주의를 버리고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을 때 이미 어느 편에 설지 선택했다"고 했다. 미 정부가 현직 주미 한국 대사의 발언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한·미 동맹 외교의 최전선을 책임지는 주미 대사가 최대 민감 이슈이자 국가 안보를 좌지우지할 미·중 갈등 사안과 관련해 외교관답지 않은 언행을 보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이 어떻게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 편에 설 가능성도 열어둘 수 있느냐는 불만을 표출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외교 소식통은 "대중 압박 전선에서 한국이 이탈할지 모른다는 미 정부의 평소 우려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표출된 듯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추진하는 탈중국 경제 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를 놓고도 한·미 간 시각차가 드러난다. 미 정부는 지난 5일 공식적으로 한국에 EPN 참여와 적극적인 지지를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는 "EPN은 아직 초기 구상 단계이며 미국의 구체적인 요청은 없는 상태"라며 한발 물러선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중국 관계 등을 고려해 미국의 적극적인 요청에 화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방위비 등에 대한 불만으로 독일 주둔 미군 9500명의 감축을 지시하면서 군 안팎에서는 주한미군 철수 우려 목소리도 다시 커지고 있다. 미국이 13억달러(약 1조5700억원) 규모의 방위비 분담금을 요구하며 우리 군에 주한미군 감축을 고려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우리 군은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우려를 미국 측에서 전달받은 바 없다"는 입장이다.
방위비 협상도 이미 작년 말에 타결돼야 했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협상 지연으로 지난 4월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가 무급 휴직에 들어가는 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최근 이들에게 인건비를 선지급하는 데 대해 양측이 합의는 했지만, 본 협상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미측은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13억 달러로 증액해 동맹 기여를 확대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국은 무리한 요구라고 하고 있다.
대북 정책과 관련해선 양측이 서로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상황이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달 말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미국은 제재의 판정 기준을 (북한으로의) 월경(越境)으로 적용한다.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미 국무부는 "남북 협력은 반드시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며 대북 제재 완화에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문 정부의 대북 정책과 관련해 "부모가 자식을 야단칠 때 엄마·아빠가 딴소리를 하면 안 되는 것처럼 한·미도 북한 문제에서 항상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면서 한·미 공조를 강조하기도 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종료 여부를 놓고도 한·미 양국의 입장 차이는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