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에 아파트를 지으면 동네 분위기를 해친다”며 주한 외교사절까지 나서서 반대했던 서울 성북구 성북3구역 재개발이 구역 지정 12년만에 최종 무산됐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최근 성북3구역 재개발조합이 서울시와 성북구를 상대로 재개발 구역 해제와 조합 설립 승인 취소 조치를 내린 것을 무효화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성북 3구역 재개발은 성북동 3-38 일대(6만7976㎡) 지역에 최고 11층 높이의 아파트 21개 동(총 827가구)를 짓는 사업이었다. 2005년 이 지역 토지주 590여명 중 절반 이상이 동의해 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됐고, 2008년 8월 서울시에서 재개발구역으로 지정했다.
이 계획은 논란도 불렀다. 재개발 예정지에서 가까운 곳에 한양도성(서울성곽), 성락원(조선시대 정원), 선잠단지(조선시대 누에농사 풍년을 기원하던 제단), 간송미술관 등 유적과 명소들이 있어 동네 분위기가 망가질 수 있다는 비판이었다. 성북동에 관저를 둔 외국 대사도 반대에 동참했다. 2008년 12월 테드 립만 당시 주한 캐나다 대사는 서찬교 성북구청장에게 재개발 반대 공문을 보냈다.
립만 대사는 “서울성곽 근처 단층 가옥들을 헐고 아파트 등을 지으려는 계획은 600년 역사를 대표하고 관광지로서 무한 잠재성을 지닌 성곽의 아름다움과 주변 미관을 해치고 평화롭고 조용한 성북동을 바꿀 것"이라고 비판했다. 외교 사절이 주재국 개발 정책에 의견을 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당시 서울시와 성북구는 “의견을 귀담아듣겠다”면서도 “재개발 자체를 중단시킬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성북구청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그런데 2010년과 2011년 잇따라 민주당 소속 구청장(김영배)과 서울시장(박원순)이 취임한 뒤 재개발에 제동이 걸렸다. 박원순 시장은 전임 시장 시절 지정된 재개발·재건축 지역 중 진행이 더딘 곳들을 해제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2016년~2018년 한시적으로 토지 등 소유자의 3분의 1이 재개발에 반대하면 투표를 실시해 찬성률이 50% 미달할 경우 재개발에서 해제될 수 있도록 했다.
이 절차를 통해 2017년 11월 서울시는 재개발 구역을 해제했고, 성북구는 조합설립인가를 취소했다. 이후 상황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서울시·성북구 결정에 반발한 조합이 서울행정법원에 이 같은 조치가 무효니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쟁점은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한 게 어느 쪽 책임인가였다.
작년 7월 1심 재판부는 “서울시와 성북구가 재개발 반대 주민들의 눈치를 살펴 결정을 미루는 등 사업 지연 책임이 있고, 재개발을 통한 주거환경 개선의 공익이 크다”며 조합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로 재개발이 재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주변 부동산 시장에 문의가 빗발쳤다. 이런 분위기는 6개월 뒤 반전됐다.
올해 1월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부가 “재개발 지역 내 토지소유자 사이에 갈등이 컸고, 사업성도 불투명해 사업이 표류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재개발을 해제한 서울시 조치는 적법했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고, 대법원에서도 유지된 것이다. 해당 지역에는 승소(勝訴)소식을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었다. 그러나 10년 넘도록 이어진 갈등으로 인한 후유증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 “이곳은 아파트 건립 위주 개발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기 때문에,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개발 시도 자체를 막을 수 없는 법적 조항은 없기 때문에, 향후 다시 비슷한 갈등이 재발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