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짧은 연수 기간을 포함해서 파리 특파원으로 프랑스에 7년 가까이 살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자동차 라디오는 6번, 자동차는 1번 도난당했다. 자전거도 1번 도난당했다. 가까운 지인들이 지하철에서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고, 어떤 여행객은 스페인에서 가족 여권 5개를 한꺼번에 도난당하는 것도 봤다. 저는 미국 뉴욕지사에 6개월 근무한 적도 있고, 일본 도쿄 여행도 수십 차례 다녔고, 3주 동안 체류한 적도 있다. 그런데 정말 서울처럼 안전한 곳이 없다.

요즘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것이 있다. 복도식 아파트, 오피스텔 등지에 각 아파트 현관마다 출입구마다 택배 물건이 쌓여 있는데 도난 사고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택배 회사 순위는 CJ대한통운, 롯데, 한진, 우체국, 로젠 순이다. 상위 5개사가 시장 90%를 감당하고 있는데, 연간 택배 물량은 30억 개 가까이 된다. 이중 절반쯤을 CJ대한통운이 맡고 있다. 배송까지 하는 온라인 쇼핑 회사로는 쿠팡을 들 수 있다. 쿠팡만 하루 250만개 주문 물량을 배송하고 365일 하루도 쉬지 않으니까 대충 계산하면 연간 9억 개 넘게 배송한다는 추산(推算)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택배 물건에 심각한 도난 사고가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택배는 우리나라에서 필수적인 사회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그것은 ‘무(無)오염, 무(無)사고, 무(無)도난’이라는 ‘3무(無) 환경’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저 어렸을 때는 마당에 걸어놓은 빨래를 걷어가는 도둑까지 있었다. 이제는 현관 앞 택배 물건에 좀도둑조차 손대지 않는, 어떻게 보면 국민적 시민의식이 놀랄 만큼 성숙한 것도 있고, 관련 기업들의 피나는 노력도 보태졌을 것이다. 부끄러운 얘기를 하나 고백하자면, 지난 달 갑자기 조깅 운동화에 꽂혀서 쿠팡을 통해 한꺼번에 7 켤레를 주문한 적이 있다. 이튿날 정신이 번쩍 들어서 그중 6켤레를 반품하는 조치를 취했다. 정말 단 한 건도 지체되는 일 없이 모두가 초고속으로 반품과 환불이 이루어졌다. 파리, 뉴욕, 도쿄에 이런 시스템, 이런 기업이 있을까 싶다. 밤 12시까지만 주문하면 다음날 오전 7시 이전까지 새벽 배송이 확실하고, 그것도 특정 도시의 특정 구역만 그러는 게 아니라 전국적으로 가능한 것 역시 ‘세계 유일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쿠팡의 부천 물류센터에 코로나 감염 사건이 터졌다. 5월24일 첫 확진자가 나왔다. 오늘까지 백 수십 명이 확진자로 판명되는 상황이다. 물론 여러 지적이 나왔다. 4000명 넘는 직원들이 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회사 식당에서 충분한 거리를 두면서 밥을 먹지 못했다, 냉동 창고에 출입하는 직원들이 방한복을 여럿이 돌려가며 입었고 한 달에 한 번밖에 세탁하지 않았다, 첫 확진자가 나왔을 때 24시간 폐쇄하지 않았다 등등 수십 가지도 넘게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쿠팡 본사가 감당해야할 책임이 분명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코로나 영웅’이 한 순간에 ‘코로나 가해자’처럼 매도당하는 아이러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몇 달 동안 코로나가 온 세계를 휩쓸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한국 국민들이 사재기를 하지 않고 모범적이고 안정적인 일상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든 원하는 물건과 음식을 반나절 만에 혹은 이튿날 새벽까지 집 앞 현관에서 받을 수 있다는 누적된 경험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구·경북 지역이 고립무원처럼 힘들어 하고 있었을 때 ‘코로나 전쟁터’의 최전선을 지켰던 분들이 의료진이었다면 그 최전선을 누볐던 사람은 물류 맨, 배달 맨이었다. 그래서 지난 3월20일 한 신문 칼럼은 ‘의사와 택배기사가 한국을 살렸다’고 썼다. 이 칼럼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한국에선 굳이 외출하지 않아도 생필품을 비롯해 필요한 모든 물건을 집에서 받아볼 수 있는 배송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 언제든 스마트폰만 열면 필요한 물건을 구할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기에 굳이 사재기하러 마트로 달려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정부가 깔아놓은 인프라가 아니라 민간기업 쿠팡이 구축한 전국적 배달망이다.’

지난 봄 대구 한사랑 요양병원이 집단 감염지가 됐을 때, 계명대 대구 동산병원이 전담병원이 되어 코로나 사투에 발 벗고 나섰을 때, 그때 전국 국민들 곁에서 같이 코로나 전쟁을 치른 사람 중에는 CJ대한통운, 우체국, 쿠팡, 배달의민족 같은 ‘택배기사 영웅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들에게서 감염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손에 돌멩이를 들고 있다. 누가 나를 건들이기만 하면 돌멩이를 던질 태세다. 어떤 아파트는 택배기사 출입을 금지한 곳도 있고, 쿠팡은 어떤 날 하루 주문량이 30%쯤 급감했다고 한다. 이미 돌멩이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대구 동산병원은 코로나 사투를 벌였던 최전선 역할을 하다가 그 후 환자는 급격히 줄고 정부의 손실 보전금은 아직 들어온 게 없어서 경영난에 봉착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쿠팡도 ‘코로나 영웅’이었다가 ‘코로나 가해자’가 되면 갑자기 경영난에 빠져들 수도 있고, 수 만 명 택배기사들의 고용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도, 언론도, 고객도 손에 돌멩이를 쥐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쿠팡도 ‘코로나 피해자’다. 바이러스의 가장 고약한 특징이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킨다는 점이다. 택배 기사를 위해 "정말 고생이 많으십니다."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라는 글을 현관에 써 붙이고, 바나나·사과·비타500 드링크를 대접했던 고객이 하루아침에 돌팔매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타다’라는 호출택시 서비스에 감동한 고객이 많았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여러 이유로 그 서비스를 퇴출시켰다. 쿠팡, 마켓컬리, 배달의민족도 이런 저런 이유로 퇴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소중한 인프라 자산인데, 단지 그들이 민간 기업이라는 이유로 퇴출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피해자 겸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위험부담을 안고 ‘코로나 최전선’을 누벼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는데도 정부는 모든 책임을 기업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 정부는 "잘 되면 자기자랑"이요 "못 되면 기업 탓"이다. 쿠팡은 로켓배송 가능 물품이 500만 종류이고, 전체 취급 품목은 2억 종류가 넘는다. 한마디로 "쿠팡에 없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요즘 물류센터 사태 때문에 쿠팡을 사례로 들었을 뿐 다른 택배·쇼핑 회사도 그런 목표를 갖고 오늘도 최전선을 누비고 있다. 택배는 이미 우리에게 수돗물 같은 ‘라이프 라인(life line)’ 즉 일상생활의 수송관이 됐다. 우리 손으로 망가뜨리는 일을 벌이게 될까 우려스럽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