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초여름 날씨를 보이면서 ‘사회적 거리 두기’ 속에서도 서울 청계천으로 바람을 쐬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요즘 청계천에서 변함없이 시민들을 맞아주는 터줏대감이 있다. 푸른색과 회색 물감을 곱게 섞은 듯 은은한 몸 빛깔. S자형으로 날렵하게 구부러진 목, 긴 다리로 사뿐사뿐 걷는 걸음걸이와 우아한 날갯짓. 물새 중에서 맵시를 얘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멋쟁이새 왜가리다.

왜가리가 설치류를 사냥해 삼키기 직전의 모습. 저항하다 여러차례 내동댕이 처졌는지 온몸이 피투성이가 돼있다./Elizabeth Haslam

전국 곳곳의 하천을 자연친화적인 모습으로 바꾸는 공사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요즘 부쩍 흔하게 볼 수 있다. 서울의 경우도 습지와 숲이 많은 청계천 7~8가 부근에서 자주볼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사대문 안 도심 한복판인 청계1가까지 곧장 날아온다. 성북천, 정릉천, 중랑천, 양재천 등 서울 곳곳의 하천에서 왜가리가 큰 날개를 유유히 펄럭이며 물가에 내려앉아, 운이 좋으면 피라미나 붕어를 사냥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막 물고기를 사냥해 삼키기 직전의 왜가리 모습. 왜가리의 목은 먹잇감의 크기에 맞춰 신축적으로 늘어난다.

이 왜가리, 사실은 한국 서식 조류계 최강자로 불러도 손색없을만큼 강하고 또한 무서운 새다. 먹성, 사냥본능, 생존능력, 거기다 타고난 호전성까지, 매나 독수리 같은 맹금류와 견줘도 손색없을 정도의 투쟁력을 가졌다고 조류 전문가들은 말한다. 왜가리의 주식은 흔히 피라미와 붕어 등 하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민물고기와 개구리 정도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전세계에 분포하는 왜가리족(族) 식단을 보면 통념을 깨는 먹거리들이 많다.

왜가리가 사냥한 뱀을 삼키전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뱀은 왜가리의 주요 먹잇감 중 하나이다. /USFWS Mountain-Prairie

뱀과 거북, 쥐와 토끼 심지어 악어새끼까지 먹는다. 깃털달린 같은 새들도 차림상에 올라와있다. 특히 즐겨먹는 것은 새끼오리다. 갓 태어나 어미 오리뒤를 졸졸 헤엄치는 귀여운 새끼오리를 벼락같이 나꿔챈 뒤 부리 끝에서 처연하게 발버둥 치는 오리를 그것도 어미 앞에서 꿀꺽 삼키는 모습에선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자연의 비정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더러는 가냘프고 연약한 느낌마저 주는, S자형으로 구부러진 목이 왜가리의 치명적 무기다. 이 목이 활 시위라면, 길쭉하고 날카로운 부리는 화살 촉이다. 왜가리는 일단 목표물을 발견하면 적절한 거리에서 있다가 급습한다. S자로 구부러졌던 목이 순간 직선으로 쭉 펴진다. 다시 목을 움츠러들었을 때 부리 끝에는 사냥감이 대롱대롱 달려있거나 꿰뚤려있다.

지난해 5월 서울 청계천 광교 부근에서 카메라 렌즈에 잡힌 왜가리. 해마다 초여름이 되면 도심 한복판 청계천 최상류까지 올라와 물고기를 사냥한다.

이 가련한 동물들이 왜가리의 뱃속이 아닌 다른 곳을 향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저항하는 쥐를 바닥에 수차례 내동댕쳤다 부리로 집어올랐다를 반복하면서 기절시키기도 하고, 물새의 새끼가 버둥거리면, 물에 담궈 반(半) 익사상태로 몰고 간다. 뱀이 부리를 칭칭 감싸며 최후의 항전을 벌일때는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뱀의 자세에 헛점이 생길 때 바로 반격에 들어가 결국은 꾸역꾸역 삼켜버린다. 경기도 안산 시화호 환경지킴이로 유명한 환경운동가 최종인씨는 “삵 정도를 제외하면 왜가리를 감히 공격할 수 있는 동물은 찾기 힘들다”며 “생태계 최상위권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새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살아있는 짐승을 사냥해 먹는다는 점에서 왜가리는 매나 황조롱이, 검독수리 등 맹금류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식사법은 딴판이다. 맹금류는 일단 사냥감을 잡으면 바로 가장 살이 부드러운 뜯어내기 좋은 부분을 집중 공략하면서 부리로 살점을 뜯어내며 식사에 들어간다. 먼저 숨통을 끊어놓는 ‘자비’따위엔 관심이 없다. 하여 먹잇감 입장에서는 숨이 붙은 채 산채로 뜯어먹히며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해야 한다.

2018년 영국 노스웨일스 경찰이 트위터 계정에 한 노인이 새끼오리를 구하기 위해 왜가리를 잡아 산채로 배를 가른 사건을 소개하며 왜가리를 죽인 당사자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반면 왜가리는 먹이를 통째로 삼킨다. 똑같이 먹히는 입장이라도 그나마 고통이 덜한 셈이다. 이런 식습성 때문에 운좋게 살아난 새끼오리의 사례도 있다. 지난 2018년 3월 영국 노스웨일스 지방에서는 한 노인이 방금 새끼오리를 삼킨 왜가리를 급습한 뒤 배를 갈라 오리를 구해내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새끼오리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왜가리는 순식간에 비명횡사했고, 노인은 ‘인간이 감히 자연 생태계에 개입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통째로 먹이를 삼키는만큼 왜가리의 위장은 여느 새를 능가하는 강력한 소화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때문에 왜가리의 똥은 다른 어떤 새똥보다도 독성이 강해 왜가리가 둥지를 튼 나무가 말라죽는 일도 일어나고, 악취로 인한 주민 민원도 종종 일어난다. 맵시있고 우아한 모습의 이면에는 지독한 냄새와 게걸스런 먹성이라는 왜가리의 또 다른 모습도 있는 것이다.

왜가리 두 마리가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왜가리는 게걸스러운 먹성과 드센 성격으로 유명하다.

삼육대학교 동물생명자원학과 정훈 교수는 “가리지 않고 골고루 먹는 식성은 조류의 생존 능력을 키워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는 황새나 두루미 등 비슷한 체급의 조류들과 달리 왜가리가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비교적 흔한 새가 된 것도 결국 먹이의 다양성에 기반한 생존력이 뒷받침됐다는 설명이다.

강한만큼 성질도 드세다. 보통 왜가리는 집안 사촌격인 백로와 같은 나무에 둥지를 트는데 백로가 가져온 나뭇가지를 휙 빼앗아 자기 집 재료로 쓰기도 한다. 야생에선 동족끼리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도 종종 관찰된다. 서울의 경우 전 지역의 하천에서 골고루 분포하지만 집단 서식지는 송파구 올림픽 공원 부근에 집중돼있다. 사람뿐 아니라 왜가리 역시 ‘강남 8학군’을 선호하고 있는 셈이다.

미 플로리다에서 관찰된 생후 4주째인 왜가리. 어미는 통째로 삼킨 먹잇감을 삭힌 뒤 게워내서 먹인다. /Diana Robinson

왜가리가 한때는 닭과 오리 등 가금류처럼 식탁에 올랐다는 흥미로운 기록도 있다. 중세 프랑스 궁정 요리법 전수서로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 ‘타유방의 요리서(유어마인드)’에는 왜가리의 요리법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선 피를 빼고, 백조나 공작처럼 어깨까지 쪼개놓은 다음 황새처럼 익히라. 고운 소금이나 카멜린 소스를 곁들여 먹느니라’, 고운 소금이나 소스에 곁들여먹는 왜가리 고기는 과연 어떤 맛일까. 왜가리의 뱃속에서 삭아들어간 어류·양서류·파충류·포유류 등 갖가지 고기들이 화학적으로 융합된 아주 독특한 맛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