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업무는 중국의 내정(內政)이다. 내정 불간섭은 국제 관계 기본 원칙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4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계기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할 경우 홍콩에 부여한 무역·관세 등에 관한 특별 지위를 해제할 수 있다는 미국의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이다.

24일(현지 시각) 홍콩 도심 코즈웨이베이에서 무장한 경찰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반중(反中) 시위에 참석한 한 시민을 제압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를 진압했고, 최소 200명을 연행했다.

중국 전인대 상무위는 지난 22일 홍콩 내 반정부 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의 '홍콩 내 국가 안전 보호를 위한 법률 제도와 집행 기구 수립에 관한 결의안'(국가보안법)을 제출했다. 이번 주 전인대에서 결의안이 통과되면 상무위가 직접 관련 법을 제정해 시행하게 된다. 왕이 부장은 "국가 안전을 위협하는 소수를 겨냥한 것으로 홍콩인들의 권리와 자유, 홍콩 내 외국투자자의 정당한 권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미국 의회·고위관료들의 코로나 중국 책임론에 대해 "정치 바이러스"라고 비판했다. "모든 기회를 이용해 중국을 공격하는 일부 정치인들은 너무나 많은 거짓말과 음모론을 만들어 냈다"고도 했다.

같은 시각 홍콩 도심 지역에선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에 반대하는 시위대 수천명이 경찰과 대치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최대 규모다. 대형 백화점과 상가가 밀집한 코즈웨이베이 지역에서는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했다. 홍콩 경찰이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쏜 것은 지난 3월 초 이후 두 달여 만이다. 시위 현장에는 물대포도 등장했다. 검은 옷을 입은 시위대는 "광복 홍콩, 시대 혁명" 등 지난해 범죄인을 중국 등으로 보낼 수 있는 송환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반중 시위 당시 썼던 구호를 외쳤다. 일부는 미국 국기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홍콩 경찰은 이날 시위대 200명 이상을 체포했다.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난 것은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가 당국의 집회 불허와 코로나 사태 등으로 지난 1월 잦아든 지 5개월여 만이다.

홍콩 정치권은 둘로 갈라졌다. 홍콩 정부와 홍콩 의회 내 친중 진영은 국가보안법을 찬성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반면 민주당 등 홍콩 범민주계 구의원 380여명은 23일 성명을 내고 법안 철회를 요구했다.

홍콩에서는 6월 4일 중국 톈안먼(天安門) 사건 기념 집회, 7월 1일 홍콩 주권 반환 기념일 등이 예정돼 있어 대규모 시위로 번질 우려도 나온다. 2002~2003년 중국과 홍콩 정부가 홍콩 의회를 통해 국가보안법을 제정하려고 했지만 2003년 50만명이 넘는 홍콩 시민이 반대 시위를 벌여 무산된 적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 홍콩에서 6개월 가까이 송환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중 시위가 일어나자 중국 공산당은 지난해 11월 전체회의에서 "법을 바꿔 홍콩에 대한 전면 통치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고, 이번에 직접 국가보안법 제정에 나선 것이다.

이 법안을 둘러싼 갈등은 국제 사회로도 번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23일(현지 시각) 영국·미국 등 각국 정치인 186명이 국가보안법을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