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유럽 연합)가 코로나 사태를 둘러싸고 중국이 조직적으로 가짜 정보를 퍼뜨리는 실태를 지적하는 보고서를 펴내려다 중국의 압박을 받고 핵심 내용을 삭제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가 25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EU 내부에선 중국의 힘에 눌렸다며 굴욕감을 느낀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EU대외관계청(EEAS)은 지난 21일 '코로나가 중국과 무관하다는 인식을 전 세계에 심어주기 위해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낼 예정이었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보고서 초안에는 "중국이 팬데믹(전염병 대유행)을 일으켰다는 책임론에서 벗어나려고 국제적 차원에서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캠페인을 이어갔고 이와 관련한 비밀 작전도 수행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중국이 퍼뜨린 가짜 정보의 예시로 프랑스 정치인들이 아프리카 출신인 테워드로스 거브러여수스 WHO(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에게 인종적 모욕을 했다는 주장이 들어 있었다. 중국이 '미국이 바이러스를 퍼뜨렸다'는 허위 주장을 했다는 내용도 담았다.

중국은 EU가 21일 보고서를 낸다는 소식을 입수하자마자 물밑에서 긴박하게 움직였다. 외신들에 따르면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 파견된 중국 외교관들이 보고서 발표를 중단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동시에 베이징에서도 주(駐)중국 EU 대표부에 압력을 넣었다. 중국 측은 "초안대로 보고서가 나오면 EU와의 관계가 나빠질 것"이라며 위협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날 EU의 외교장관격인 주제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의 선임 보좌관인 에스테르 오소리오가 보고서 발간을 중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사흘 뒤인 24일 발표된 보고서는 주요 내용이 상당 부분 누락됐다. 최종본에는 '중국이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캠페인을 전개했다'는 표현과 관련된 내용 전체가 삭제됐다. 중국이 프랑스와 WHO 사이를 이간질했다는 것을 포함해 민감한 내용은 죄다 빠졌다.

이번 '보고서 파동'에 대해 EU의 한 외교관은 "(중국) 공산당을 달래기 위해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며 EU 고위층을 향해 항의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EU는 중국이 EU산 물품 수입을 늘려줘야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타격에서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처지다. 특히 독일산 자동차, 프랑스산 농산물 등 유럽 주요 수출품의 중국 내 소비량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으면 경제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EU와 중국의 하루 교역량은 16억유로(약 2조1300억원)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