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유럽·미국에선 마스크를 쓰면 병에 걸린 사람이거나 얼굴을 가리고 싶어 하는 범죄자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발병 이후에도 의료진이 아닌 이상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하지만 최근 유럽 각국 정부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국민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한국·홍콩 등에서 마스크를 착용해 급한 불을 끈 것을 배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마스크 무용론'이 무너지는 양상이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지난 30일(현지 시각) 기자회견을 열어 4월 1일부터 수퍼마켓·마트에서 장을 볼 때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밝혔다. 쿠르츠 총리는 "마스크는 우리의 문화는 아니지만 지금은 필요하다"고 했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체코, 슬로바키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이어 유럽에서 정부가 마스크 착용을 공식화한 네 번째 사례다.

프랑스도 정부 차원에서 지난 28일 중국에 마스크를 10억장 주문했다. 프랑스에서는 경찰관에게 마스크를 지급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고 있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에서는 최근 장 보러 나갈 때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독일 보건부는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대신 이동 금지령을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문제는 공급이 달려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스페인의 일부 의사는 스킨 스쿠버가 잠수할 때 쓰는 마스크를 개조해 쓰는 형편이다. 프랑스는 매주 4000만장이 필요하지만 자국 생산은 800만장에 그친다.

워싱턴포스트는 30일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일반인들에게도 마스크를 쓰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과 관련해 "당연히 우리가 논의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짧은 기간은 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마이클 라이언 WHO(세계보건기구) 긴급준비대응 사무차장은 30일 "의료진과 환자를 제외하고 아프지 않은 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며 기존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 반대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