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처음으로 미국식 토크쇼를 선보인 방송인 자니 윤(본명 윤종승·84)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8일(현지 시각) 별세했다. 재미 교포 코미디언으로 미국과 한국에서 활동했던 고인은 뇌경색과 뇌출혈 후유증으로 LA 인근 한 요양 병원에서 투병 중이었다. 지난 4일 혈압 저하 등으로 LA의 알람브라 메디컬센터에 입원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평소 그를 돌봐온 전처 줄리아 리씨는 10일 본지 통화에서 "제가 잠시 한국에 나와 있는 동안 병세가 안 좋아졌다"며 "제 아들이 전화를 연결해줘 화상 통화로 임종할 수 있었다.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고 전했다.

한국에 처음으로 미국식 토크쇼를 선보인 자니 윤이 방송에서 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자니 윤 이야기 쇼'를 진행하면서 미국식 농담과 함께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자니 윤은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서울 성동고를 졸업한 뒤 1959년 국내에서 방송인으로 데뷔했다. 1962년 해군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가 오하이오 웨슬리언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파트타임 가수로 시작해 영화배우, 스탠드업 코미디언 등으로 활동하다가 1977년 유명 코미디언 자니 카슨의 눈에 띄어 동양인 최초로 당대 최고 TV 프로그램인 '더 투나잇 쇼'에 출연하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1980년까지 30차례 이상 투나잇 쇼에 출연했다. NBC에서 자기 이름을 건 '자니 윤 스페셜 쇼'를 진행하며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1989년에는 활동 무대를 국내로 옮겨 KBS2에서 '자니 윤 쇼'를 진행했고, 1991년 민방 SBS에서 '자니 윤 이야기 쇼'를 진행하며 국내 방송계에서 1인 토크쇼 전성시대를 열었다. 딱딱한 대담 일색이던 토크쇼 분위기를 확 바꿔 보조 MC와 게스트가 등장해 근황 이야기와 조크를 이어가는 새로운 포맷을 도입했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라는 클로징 코멘트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방송계를 떠나 미국에서 생활하던 자니 윤은 2007년 당시 유력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미국 후원회장을 맡았고, 2012년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재외국민본부장을 맡았다. 이때 인연으로 2014년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 임명됐다. 하지만 임기를 1년여 남겨둔 2016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국내와 미국에서 투병해 왔다. 2017년 TV조선을 통해 미국에서 투병하며 한국을 그리워하는 모습이 방송되면서 많은 이를 안타깝게 했다. 뇌출혈 후유증으로 치매 증세까지 보였다. 의사소통이 힘든 상황에서도 '자니 카슨 쇼'란 말을 들으면 미소를 짓는 등 전성기에 대한 행복한 기억을 간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신은 평소 고인 뜻에 따라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메디컬센터에 기증하기로 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