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남서쪽에 이시레물리노(Issy-les-Moulineaux)라는 교외 도시가 있다. 고풍스러운 파리와 달리 현대식 건물이 많아 세련된 곳이다. 이달 중순 치러질 프랑스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시레물리노에선 관전 포인트가 딱 하나다. 앙드레 상티니라는 현직 시장이 연속 8선(選)에 성공하느냐 여부다. 1940년생인 상티니는 1980년부터 40년째 시장을 맡고 있다. 얼마 전 이시레물리노 시내에서 만난 브로네라는 50대 남성은 "20년 전 이 동네에 정착한 이후 시장은 늘 상티니였기 때문에 다른 시장은 상상이 안 된다"고 했다. 엘르와즈라는 40대 여성은 "40년 재임 자체는 이야깃거리가 못 된다"며 "그보다 더 오래 시장을 맡는 경우도 꽤 있다"고 했다.
선출직 연임 제한이 없는 프랑스에선 1965년 이전에 취임해 55년 이상 연속 재임 중인 시장만 11명이다. 현역 최장수는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130㎞ 떨어진 드르와지라는 곳의 폴 지로(89)다. 그는 27세이던 1958년 처음 시장으로 뽑혀 62년째 재임 중이다. 역대 기록은 엽기에 가깝다. 최장기간 시장 재임 기록 보유자는 19세기 앙드레 코르뉘라는 사람이다. 72년간 자리를 지켰다. 최고령 시장으로는 1953년 70년간 시장으로 재임하던 중 101세로 별세한 샤를 에드몽 마티스의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
한 사람이 긴 세월 시장직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 평론가 피에르 자코메티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프랑스에선 상·하원 의원은 정당을 보고 투표하지만, 시장은 정치 노선을 걷어내고 철저히 동네 일꾼을 고르죠. 한번 일 잘한다는 평판을 얻으면 주민들이 끝까지 애정을 줍니다. 프랑스는 지방자치단체당 인구가 적어 주민들이 시장을 가까이 접촉할 기회가 많다는 점도 작용하죠." 중앙부처의 한 엘리트 공무원은 "시장 권한이 커서 한 번 자리에 앉으면 포기할 생각을 안 한다"고 했다. 젊은이들 중에선 "변화를 거부하는 정체된 사회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말이 나온다.
프랑스는 예전엔 시장이 총리·장관·국회의원을 겸직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시장이 중앙 정치무대에 진출하더라도 계속 시장직을 유지하며 장수할 수 있었다. 과거 지방 영주·귀족끼리 경쟁하던 전통이 남아 있어 동네 출신 정치 거물을 만들어주고 싶어하는 심리가 작동한다는 분석이 있다. 이시레물리노의 상티니 시장은 재임 도중 하원 의원을 26년간 겸직하며 하원 부의장도 지냈고, 현역 최장수 지로 시장은 상원의원을 30년 했다. 1947년부터 보르도 시장을 48년이나 내리 지낸 자크 샤방델마스(1915~2000)는 총리·하원 의장 겸임 기간만 18년에 이른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도 일부 정치인의 독식을 막아 고인 물을 걷어내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14년 지방선거부터 시장과 상·하원 의원 겸직을 법률로 막았다. 시장과 장관의 겸직은 여전히 가능하다. 하지만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가 "둘 중 하나만 선택하게 하겠다"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선출직 임기에 제한을 두는 정치 개혁을 추진 중이다. 한 지역에서 시장 또는 국회의원을 연속으로는 세 번까지만 맡을 수 있도록 상한선을 두자는 게 핵심이다. 굼뜨고 고루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프랑스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