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 시각) 홍콩 내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홍콩인권민주주의법에 전격 서명했다. 중국은 하루에 5개의 비난 성명을 내고 "14억 중국인을 얕보지 마라"며 격렬히 반발했다. 중국은 무역 마찰과 달리 홍콩 문제를 협상할 수 없는 주권·안보 문제로 보고 있어 양측 대치가 날카로울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홍콩인권법 등 홍콩 관련 법 2건에 서명했다. 홍콩인권법은 미 국무부가 매년 홍콩의 인권·자치 상황을 평가해 의회에 보고하고, 미국이 홍콩에 제공하는 무역·투자 분야의 혜택을 조정할 수 있는 내용이다. 홍콩의 인권 탄압과 연루된 중국 정부 관계자 등에 대한 미국 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홍콩인이 정치 시위에 참가해 처벌된 범죄 경력이 있더라도 미국 비자 발급 때 참작해 주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국 기업이 홍콩에 최루탄, 고무탄 등 시위 진압 무기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에도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안에 서명하면서 "나는 시(진핑) 주석, 중국, 홍콩 시민에 대한 존경을 담아 법안에 서명했다"며 "이 법은 중국과 홍콩의 지도자, 대표자들이 차이를 평화적으로 극복해 오래도록 평화와 번영을 누리기를 희망하며 제정됐다"고 밝혔다.

홍콩시민들 “생큐 트럼프” -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홍콩인권민주주의법(홍콩인권법)’에 서명한 후인 28일 밤 홍콩 에든버러 광장에 시민 수천명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일부 참가자는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이날 중국 국방부 런궈창 대변인은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은 언제든 당 중앙위원회와 중앙군사위원회의 지휘에 따라 부여한 사명을 이행함으로써 국가 주권을 단호히 수호하고, 홍콩의 장기적인 안정을 유지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지도부 결심만 있으면 중국은 언제든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을 투입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외신에서 법안 서명 소식이 나온 지 1시간 40여분 만인 28일 오전 성명을 내고 "(미국이) 계속 잘못된 길로 간다면 중국도 대응책을 취할 것이며 그 후과(後果)는 모두 미국이 책임져야 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날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駐中) 미국 대사, 한스컴 스미스 홍콩주재 미국 총영사를 각각 베이징과 홍콩에서 불러 항의했다. 브랜스태드 대사는 홍콩인권법 문제로 지난 25일에 이어 3일 만에 또 초치됐다.

홍콩 관련 업무를 하는 기관들도 일제히 성명을 냈다. 국무원 홍콩마카오 판공실은 "(홍콩인권법은) 홍콩 반중(反中) 분자들을 보호하려는 것"이라며 "미국은 홍콩을 혼란스럽게 하는 가장 큰 '검은손'이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미국 내 아동 이민자 수감 사실을 언급하며 "미국의 인권 재앙은 미국이 이미 국제사회에서 인권 모범의 역할을 할 자격이 없으며 미국 정치의 허위와 냉혹함이 현재 인권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코너 몰린 트럼프가 트위터에 올린 ‘록키’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 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 영화 ‘록키3’의 포스터에 트럼프의 얼굴이 합성돼 있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국면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는 해석을 내놨다.

홍콩 시위대와 민주 진영은 홍콩인권법 통과에 환호했다. 2014년 직선제 시위를 이끌었던 조슈아 웡은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홍콩 시민의 인내와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홍콩인권법은) 미국의 대중국 정책, 미국과 홍콩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했다.

지난 6월 이후 홍콩에서 반정부·반중 성향의 시위가 계속되자 중국은 홍콩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의 전제는 일국(一國)이라고 강조하며 적극적으로 관여해왔다. 홍콩인권법은 이런 노력에 대한 직접 방해라는 게 중국의 인식이다. 중국은 이 법이 미 의회에서 발의돼 상원, 하원을 차례로 통과할 때마다 외교부 대변인, 왕이 외교부장, 양제츠 외교 담당 정치국위원으로 급(級)을 올려가며 미국에 경고해왔다.

이런 배경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그간 2차례 공개적으로 홍콩 질서 회복을 강조했고, 지난 22일 베이징에서 한 경제포럼에 참석한 외국 대표단을 만나 "(중국은) 과거 반식민지·반봉건 국가의 굴욕을 절대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시 주석은 27일 베이징 국방대학에서 열린 군사 관련 대학 합동 훈련에 참석해 강군(强軍) 사상을 강조했다. 강군 사상은 미국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군대 육성을 뜻한다. 중국은 이날 미국에 대한 보복 카드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관영 환구시보는 미국 의원의 입국을 제한하는 방안 등을 거론했다. 막바지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던 미·중 무역 협상 발표도 미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