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주필

11월 27일 아침 신문을 받아 들고 든 생각은 ‘막장 같다’는 것이었다. 임기가 절반이나 남은 정부에서 막장의 냄새를 맡기는 처음인 것 같다. 조선일보 1면 머리기사는 야당 울산시장 후보가 공천 확정된 바로 그날 경찰이 그의 사무실을 압수 수색한 것은 청와대의 첩보에 따른 것이란 내용이었다. 이 압수 수색으로 선거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당선된 민주당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이자 조국 전 민정수석이 후원회장을 맡았던 사람이었다. 압수 수색 혐의들은 선거가 끝난 다음에 모두 무혐의가 됐다. 피해자인 야당 후보는 “선거 사기”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 야당 후보는 억울함을 하소연했지만 다른 사람은 목숨을 끊었다. 야당 창원시장 후보가 공천을 받은 그날 그에 대한 비리 혐의가 경찰에 의해 공개됐다. 선거는 하나 마나였다. 그는 낙선 뒤 수사를 받던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당선된 사람은 대표적 친노 인사로 그 형은 노무현 정부 장관을 지냈다. 수사가 중단돼 야당 후보의 혐의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치 공작이라고 생각한다. 정권의 실력자가 "내가 당선시킨 게 몇 명"이란 식으로 말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울산시장과 창원시장은 그중 한 사람일 것이다.

1면 둘째 기사는 정부가 경제성 검토 보고서를 정반대로 왜곡해 월성 원전 1호기를 강제 폐쇄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결정을 한 한수원 이사들에게는 '폐쇄 결정을 내려도 배임죄 걱정할 필요 없다'고 안심시켰다고 한다. 검토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검게 칠해 모르게 하고 공개했다. 월성 1호기는 7000억원을 들여 사실상 새 원전으로 개수한 발전소다. 이 발전소의 과거 평균 가동률만큼만 돌려도 4년 동안 1000억원 이상의 이득이 있는데 탈원전한다고 억지로 폐쇄한다는 것이다. 개수 비용 7000억원을 그냥 날리고, 가동으로 얻을 수천억원을 날리고, 줄일 수 있는 미세 먼지를 대량 방출하면서 얻는 것은 대통령의 오기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1면의 셋째 기사는 김정은이 서해에 내려와 해안포를 쐈는데 우리 군이 뒤늦게 항의문을 보냈다는 내용이다. 북의 남북 군사합의 위반은 중요한 사태다. 그런데 포성을 듣고도 숨기고 있다가 북한이 '쐈다'고 발표하자 '항의'하는 쇼를 했다. 북이 발표하지 않았으면 끝내 숨겼을 것이다. 관련 기사로 북한이 서해 섬 곳곳을 요새화하고 있다는 기사가 4면에 실렸다. 그에 대해 군은 "탈북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는 것이다. 군이 아니라 여당의 하부 기관이다.

5면에는 정권의 실력자들이 나와 '주한미군은 공군만 좀 남기고 지상군은 다 철수해도 된다'고 했다. 이 사람은 천안함 폭침을 '소설'이라고 했고 조국 아내의 증거인멸 행위를 '증거 보전'이라고 했다. 이제는 다시 군사 전문가가 돼 5100만명의 안위를 갖고 희롱을 한다.

사회면에는 정치 편향 교육을 한 서울 인헌고가 정치 교사를 폭로한 학생을 학교폭력위원회에 회부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교육감이 학생들에게 황당한 정치 편향 교육을 한 교사를 벌하지 않고 고발한 학생을 비난하더니 이제 그 학생을 학폭위에 넘긴다는 것이다. 기막힌 일이다. 그 교육감은 제 자식은 외고 보내더니 지금은 자사고, 외고 없애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 어이없는 일들이 하루에 다 일어났다. 사실 거의 매일 그렇다. 지금 경제계에선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을 아예 무시한다고 한다. 앞에서 굽신할 뿐이다. 경제 역주행이 계속되는데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 포기한 것이다. 외교 안보 사령탑들은 서로 싸우거나, 우방국과 싸우거나 둘 중 하나다. 국회에선 선거제도와 형사 사법 체계를 정권이 제 맘대로 바꾼다고 난리다. 보름 안에 무슨 사태가 날 것 같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유재수 사건은 권력형 비리 게이트로 가는 길을 밟고 있다. 결국 특검까지 갈 것으로 본다.

탄광의 막장은 아직 버팀목을 세우지 못한 곳이다. 그래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버팀목이 없는 막장에 와 있다. 이미 몇 달 전에 청와대 비서들 스스로 "4년 차 같다"고 했다. 울산시장 사건, 유재수 사건, 국회 사태 등은 막장의 천장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조짐이다.

막장에서 일했던 광부의 수기를 읽으니 거기선 특이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산소가 모자라기도 하지만 ‘위험’이라는 것이 냄새로 바뀌어 떠도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 정권 사람 모두가 그 냄새를 맡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죄 없는 국민도 그 막장의 냄새를 맡고 있다. 어디를 가도 ‘기업이 안된다’ ‘장사가 안된다’ ‘세무조사가 너무 심하다’ ‘노조 때문에 못살겠다’고 한다. 이들은 빨리 막장에 버팀목을 세워주기를 바란다. 고칠 것은 고쳐 달라는 것이다. 정권은 무조건 ‘안 무너질 테니 걱정 말라’고 한다. 그런데 들고 있는 버팀목을 보니 달랑 ‘야당 복’ 한 개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