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스트=손진석 특파원

지난 2일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남동쪽으로 150㎞ 떨어진 소도시 포르스트. 시내 중심부의 3층짜리 우체국(도이체 포스트) 건물이 텅 비어 있었다. 인구가 줄어 운영 비용이 많이 든다며 지난 6월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이곳 주민 다닐로 폴(Pohl·53)씨는 "분단 시절 서독의 친척과 편지를 교환하던 추억의 장소였는데 사라지게 돼 마음이 아프다"며 "기본적인 우편 서비스도 이용 못 하게 할 정도로 동독을 푸대접하니 화가 난다"고 했다.

독일은 오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통일로 가는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그날을 환영하기보다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동·서독 간 격차에 따른 갈등이 부각되고 있다.

포르스트는 섬유산업의 메카로 불리며 1990년대까지는 동독에서 부유한 도시로 꼽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섬유 공장들이 문을 닫은 뒤 쇠락을 면치 못해 동독에서도 주민들의 불만이 위험 수위에 도달한 곳으로 꼽힌다. 통일을 이룬 1990년 2만8000명이던 인구는 1만8000명으로 29년 사이 36% 줄었다. 빈 상점과 폐가(廢家)가 곳곳에 방치돼 있다.

서점을 운영하는 카트린 베르거(55)씨는 "동독 시절 서점 점원이다가 통일된 이듬해 제 서점이 생겨서 기뻤지만 통일로 행복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며 "일자리가 부족한 탓에 젊은이들이 떠나면서 너무 황량해졌다"고 했다. 베르거씨의 두 아들도 고향을 등졌다. 장남은 슈투트가르트의 IT 회사에, 둘째는 베를린의 에너지 회사에 다닌다. 포르스트의 60세 이상 인구 비중은 35%에 달한다.

베를린 장벽에 투사된 30년전 모습 - 30년 전인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동베를린 방향으로 남아 있는 장벽 1.3㎞ 구간은 전 세계 예술가들의 거대한 캔버스로 쓰이며, 이스트사이드(east side) 갤러리로 불리고 있다. 4일(현지 시각) 이 벽에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영상이 투사돼 있다.

섬유 공장이 사라진 데 이어 신재생에너지를 강조하는 독일 정부가 인근 화력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하자 주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이 발전소가 직접 고용하는 포르스트 시민만 400명이다. 정부는 베를린에서 연결되는 철도를 건설하겠다고 통일 직후 약속했지만 30년째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서베를린에서 태어나 2년 전 아내의 고향인 포르스트에 정착했다는 데니스(29)씨는 "한 달 전 회사에서 갑자기 해고됐는데 일자리가 적은 지역이라 새 직장을 못 구하고 있다"며 "서독인으로서 동독인들의 불만을 말로만 듣다가 직접 경험해보니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포르스트 사례에서 보듯 동독인들이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어 독일은 여전히 통합된 나라가 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월 독일 정부가 동독인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등 시민이라고 느끼는지' 묻는 질문에 57%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한 '통일이 성공적이었다'는 데 동의하느냐는 문항에는 38%만 '그렇다'고 했다.

독일 정부는 통일 이후 2조유로(약 2600조원)가 넘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동독에 투자했지만 동·서독 간 경제적 격차를 해소하지 못했다. 싱크탱크인 할레경제연구소(IWH)가 독일 500대 기업의 분포를 조사해보니 서독에 93%(464곳)가 있고 동독에는 불과 7%(36곳)만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포경제연구소(IFO)에 따르면 1989년 1700만명이던 동독 인구(베를린 제외)는 올해 1360만명으로 줄어 1905년 수준으로 감소했다. 일자리를 찾아 젊은이들이 서독으로 이주한 결과다. 독일 실업률은 올해 8월 기준으로 3.1%로 역대 최저 수준이지만 동독 지역 실업률은 6% 안팎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싱크탱크들은 동독의 소득수준이 서독의 80%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서독인들은 베를린 장벽 30주년에 대해 대체로 무덤덤하다. 지난 1일 동·서베를린의 경계였던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만난 클라우스 뮐러(53)씨는 "통일이 되고 나서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해졌다는 것 말고 좋아진 게 뭐가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했다. 브란덴부르크문 근처를 지나던 마르쿠스라는 30대 남성은 "동독인들은 서독인들의 희생으로 바르샤바나 부다페스트보다 훨씬 잘살게 됐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은 채 '왜 뮌헨이나 함부르크만큼 잘살지 못하느냐'며 불평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