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26일(현지 시각) 저녁 시민 150명과 만났다. 지난 6월 범죄인인도법안(송환법) 반대로 시작된 시위가 석 달 넘게 계속되자 "시민의 의견을 듣겠다"고 마련한 첫 번째 자리다. 2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시민들은 홍콩의 경제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쏟아냈다.
20대 남성 발언자는 람 장관에게 "2047년 당신은 90세라 상관없겠지만 나는 55세가 된다"며 "그 이후에도 우리에게 미래가 있느냐"고 말했다. 홍콩기본법에 따라 홍콩은 2047년까지 자본주의 제도를 유지(일국양제)하게 돼 있다. 한 30대 남성은 "내가 아는 사람 중 97%가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홍콩 공항에서 30년간 일했다는 여성은 "(중국) 선전에 (홍콩) 공항을 빼앗기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은 람 장관에게 "홍콩인들은 자유와 민주를 원한다"고 했다. 마스크를 쓴 한 남성 발언자는 "젊은이들은 투표할 권리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분노하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그들(젊은이)을 위해 싸워준다면 당신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홍콩 지도부에 대한 직설적 비판도 나왔다. 한 발언자는 람 장관에게 "학교에서 1등이었고, 좋은 관리였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행정장관은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석 달간 행정은 0점"이라는 발언도 나왔다.
이날 행사에는 사전 신청한 2만여명 가운데 임의로 뽑은 150명이 참석했다. 이 중 추첨을 통해 30명이 3분씩 발언했다. 대화 내용은 생중계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30명 가운데 13명이 시위에 대한 경찰의 진압 과정을 조사할 독립적 위원회 설치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발언자 4명은 "5대 요구 중 한 개도 뺄 수 없다"는 시위대 구호를 언급했다. 시위대는 송환법 철회, 독립조사위 구성, 행정장관 직선제, 시위대에 대한 '폭도' 규정 철회, 불기소·사면 등 다섯 가지를 요구해 왔다. 홍콩 정부는 이 가운데 송환법 철회만 받아들였다.
람 장관은 "홍콩의 미래는 젊은이들의 손에 달렸지만 최종적 기준(bottom line)이 있다. 홍콩의 자치와 독립은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독립조사위 등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행사가 열린 퀸엘리자베스체육관 주변에는 시위대 수백명이 몰려 람 장관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