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 친화 도시는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추세입니다. 서울의 세 가지 보물인 산과 강 등 아름다운 자연, 오랜 역사, 빛나는 서울 시민들을 위한 보행 친화 정책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설명에 영국 시민단체 워크 21의 창립자 짐 워커(52) 대표가 "매우 동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 시장과 워커 대표는 지난 26일 서울시청에서 만났다. 워크21은 2000년 설립돼 세계 주요 도시의 보행 친화 인프라 구축에 참여해왔다. 워커 대표는 글로벌 걷기 문화의 전도사로도 불린다. 83개국에서 100개의 도심 보행 코스 개발에 참여했다. 이번 만남은 두 사람이 지난 5월 런던에서 만났을 때 박 시장이 "서울 도심의 길 곳곳을 걸어보고 어떤 점을 개선할 수 있을지 의견을 달라"고 요청하고 워커 대표가 수락하면서 성사됐다.
이날 대담은 워커 대표가 서울을 직접 걸어본 느낌과 이를 바탕으로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제안하면, 박 시장이 이를 평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워커 대표가 이틀에 거쳐 서울역 인근 고가정원인 서울로7017과 성북동~한양도성~삼청동~세종대로 네거리로 이어지는 12㎞ 길을 걸었다는 얘기를 들은 박 시장은 "성(姓)도 걷는 사람(Walker)이라는 뜻인데, 진정 보행 친화 도시를 만들기 위해 태어난 분"이라고 농담을 건넸다.
워커 대표가 "서울의 산에서 시작된 물길이 지하로 흐르는 구간을 빛이나 소리, 동작 등으로 표시하자"는 제안을 하자, 박 시장은 "풍수지리설을 잘 취재하신 것 같다. 조선 태조나 무학대사, 이런 분들이 서울을 수도로 정한 이유가 있다. 생명의 근원인 산과 수원지를 보존하고 물길을 표시하는 작업이라도 하는 방안을 고민해보겠다"며 화답했다.
워커 대표가 한양 도읍을 설계할 때 중심 이념이었던 인의예지(仁義禮智) 사상을 살려 각각의 이름을 붙인 길을 조성하는 가칭 '서울 골든서클' 아이디어를 내자 박 시장은 이를 광화문광장 재조성 사업과 연계하자는 즉석 구상도 내놨다. 박 시장은 "조선왕조 건국의 기초가 된 것은 유교적 이념이고, 광화문은 그런 이상을 가진 곳"이라며 "광화문광장 사업에도 이런 점이 반영돼 보행길뿐 아니라 정신과 역사를 담은 길, 시민들에게 성찰과 명상과 배움을 경험할 수 있는 루트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워커 대표는 이날 "서울로와 서울역사의 연결이 필요하다"며 서울역사 주차장을 공원으로 조성해서 서울로와 잇고, 서울역~서울로를 잇는 나선형 미끄럼틀도 놓자고 제안했다. 박 시장은 "민주주의 서울 플랫폼을 통해 기관이나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구체적인 제안을 받아서 바꾸면 어떨까 한다"고 말했다. 워크21은 2000년부터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선진 보행 문화 구축을 주제로 국제회의를 개최한다. 올해는 다음 달 초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리고, 21회째를 맞는 내년에는 서울에서 열린다.
내년 회의에 대해 의견을 나누던 박 시장이 워커 대표에게 즉석 제안을 했다. "워크21 본부를 서울에 유치하고 싶고, 그게 어려우면 아시아 센터라도 왔으면 좋겠다. 성사되면 시민증을 드리겠다"는 박 시장의 말에 워커 대표는 "영국 상황이 폭발 일보 직전이어서 서울 시민권을 요청하고 싶다"며 웃었다.
성(Walker) 때문에 종종 예명으로 오인받지만 짐 워커라는 이름은 실명이다. 영국·미국·뉴질랜드 등에서 국립공원 환경 감시원으로 활동하다가 2000년 영국 구제역 창궐을 계기로 인생 항로가 바뀌었다. 입산이 통제되자 대안으로 도심 보행 코스를 만드는 영국 정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도심 속 걷기 문화 전파에 앞장서게 됐다. 그가 말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굳이 주말에 시간을 내서 산에 찾아갈 필요가 없어요. 내가 사는 곳의 거리를 걷는 경험을 하도록 도와주는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