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톈안먼(天安門) 시위 강경 진압의 주역 리펑(李鵬·91) 전 중국 총리가 별세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3일 "리 전 총리가 22일 오후 11시 11분 베이징에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중화권 매체들은 그가 폐암으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리 전 총리는 1988년부터 1998년까지 중국 제4대 총리를 지냈다. 그는 1989년 6월 민주화를 요구하며 톈안먼 광장에서 시위 중이던 대학생과 시민들에 대한 유혈 진압을 주도했다. 계엄령 선포, 군대를 동원한 진압을 관철시킨 그를 중국 민주화 인사들은 '톈안먼의 학살자'라고 불러왔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 지도부였던 왕단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학살의 집행자이자 하수인인 리펑은 죽어서도 역사의 '치욕의 기둥'에 못 박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28년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태어났다. 저우언라이·주더 등과 함께 국민당에 맞선 공산당의 난창(南昌) 봉기를 주도했던 아버지 리옌쉰(李硯勛)은 리펑이 세 살 때 국민당에 처형당했다. 후일 중국의 초대 총리가 된 저우언라이 부부의 보살핌 속에 자란 그는 '저우언라이의 양자'로 알려졌다. 리 전 총리는 그러나 2014년 회고록에서 저우언라이와 자신은 "원로 동지와 혁명열사 자녀의 관계일 뿐"이라고 말했다.
17세였던 1945년 공산당원이 된 그는 소련에서 수력발전으로 박사학위를 하고 돌아와 1979년까지 발전 분야에서 업적을 쌓았다. 이후 1982년 전력부장(장관)을 시작으로 부총리를 거쳐 1985년 정치국원, 1987년 정치국 상무위원 및 총리에 오르며 최고 권부에 진입했다.
그는 톈안먼 사태를 수습했지만, 최고 권력자 덩샤오핑은 손에 피를 묻힌 리펑을 제치고 장쩌민을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했다. 리펑은 총리와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거치며 장쩌민 시대 내내 2인자에 머물렀다.
개혁개방에 보수적이었던 그는 정치 개혁가였던 전임 자오쯔양, '경제 차르(황제)'로 불렸던 후임 주룽지와 비교해 역사적인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1994년 중국 총리로는 사상 처음으로 방한해 김영삼 대통령과 회담했다.
아들 리샤오펑(60)은 현재 중국 교통운수부장(장관)이다. 칭화대·MIT를 나온 딸 리샤오린(58)은 전력 회사를 설립하는 등 한때 중국 전력계의 여왕으로 불렸으나, 시진핑 정권의 반부패 바람 속에 모든 자리를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