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꽃제비'를 단순히 방랑자나 걸인 정도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꽃제비는 북한 국가권력의 통제에서 끊임없이 이탈하려고 하는 정치·경제적 저항 집단입니다."
함북 청진에서 태어나 2000년 탈북한 김혁(37·사진)씨는 최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은 '북한 꽃제비의 형성 과정과 국가 통제로부터의 이탈'이다. 논문을 지도한 이완범 교수는 "꽃제비 출신이 쓴 최초의 꽃제비 연구 박사 논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일곱 살 때 집을 뛰쳐나와 꽃제비가 됐다. 구걸하고 훔치면서 정처 없이 떠도는 신세였다. 1990년대로 접어들자 그런 아이들이 급속히 늘어났다. 배급이 끊기며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곳곳에서 가정이 해체됐다. 이런 상황에서 꽃제비 생활이 순탄했을 리 없다.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매 맞아 죽는 '3대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생활이었습니다."
쓰레기더미를 뒤져 먹을 것을 찾고, 온기가 남아 있는 제철소 석탄재 옆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옆자리 친구가 죽어 있는 일은 예사였다. 기술이 발전한 꽃제비들은 장사꾼의 물건을 날쌔게 덮쳐 훔치는 '덮치개', 물건을 통째로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파장꾼', 면도날로 가방을 찢는 '데사꾸', 남의 집에 들어가 훔치는 '문차기'로 연명했다."몰래 월경했다는 이유로 한 번 들어가면 아무도 살아 나올 수 없다는 회령 전거리 제12교화소에 끌려갔습니다." 간신히 그곳에서 나왔을 때 몸무게가 35㎏. 이제 목숨을 건 탈북을 감행해야 했다.
남한 사람들의 농담을 이해하고 싶었던 김씨는 가톨릭대에 진학해 국사학을 공부했다. 자신의 경험을 담은 꽃제비 연구로 2012년 서강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꽃제비에 대해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북한 정권 수립 이전부터 '부랑자'라 불렸던 반(反)체제적 존재"라고 했다. "결국 집단주의와 전체주의로 유지되는 거대한 통제 사회에 균열을 만들어내는 조직이 될 겁니다."
그는 남한에서 유행하고 있는 '헬조선'이란 말에 대해 한마디 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아야 합니다. 여기선 끝없이 도망 다니고 숨어야 할 필요도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