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 시각) 모스크바 크렘린궁의 브리핑룸. 러시아 기자들이 "많은 국민들이 궁핍하게 살고 있다는 통계청 발표에 대해 한마디 해 달라"고 하자,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이 짜증 섞인 표정을 지었다. 페스코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페스코프는 "신발을 한 켤레 더 살 수 없는 국민이 3분의 1을 넘는다고요? 대체 그 숫자가 어디서 나온 건지 통계청이 설명 좀 해주면 좋겠군요"라고 말했다.
러시아 통계청이 지난달 국민의 35%가 연간 신발을 한 켤레 추가로 구입할 여유가 없고, 53%는 병원비·주택 수리비 등 예상치 못한 지출이 발생하면 감당하지 못한다는 가계 통계 조사를 발표했다. 통계청은 또 국민 열 명 중 한 명은 상비 의약품조차 살 돈이 없고, 집 안에 화장실이 없어 공동 화장실을 써야 하는 가구가 전체의 13%라고 밝혔다.
이번 가계동향 조사는 통계청이 2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것으로 작년 11월 전국 6만 가구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크렘린궁이 이 통계를 불편해하는 이유는 근년의 저(低)유가와 서방의 경제 제재로 인한 불황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푸틴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반(反)정부 시위가 빈번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 불리한 통계가 연거푸 나오자 작년 12월 푸틴은 통계청장을 교체했지만, 새 통계청장 아래서도 가계 사정이 나빠지고 있다는 통계가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러시아 통계청은 국민들의 실질 가처분소득(세금 등을 낸 뒤 실제로 손에 쥐는 소득)이 작년까지 5년 연속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인의 평균 월급(올해 1월 기준)은 4만1220루블(약 72만원)에 그친다.
페스코프가 통계청 발표에 노골적으로 불신을 표시한 것은 크렘린궁의 고위 공직자들이 평범한 이들의 궁핍한 생활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페스코프의 경우 2016년 러시아 월 최저 임금의 2배 가격인 고급 부츠를 신고 있는 모습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BBC는 "크렘린궁이 공개적으로 통계 신뢰도에 의문을 표시하면서 러시아에서 '통계 조작'이 벌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