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풀 허용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으로 도입하기로 한 택시 월급제를 놓고 택시 회사와 노조(택시 기사)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택시 회사들은 "늘어날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고, 노조는 "약속대로 시행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7일 사회적 대타협기구에서 택시 회사 대표 격인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와 택시 기사들을 대변하는 한노총·민노총 양대 택시노조 등은 '택시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월급제를 시행한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27일 열리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소위원회에서 월급제 시행 관련 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협력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19일 연합회는 국토교통위에 "정부 지원이 없이 법안부터 통과시켜선 안 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택시 노조는 "합의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약속을 깼다"는 성명을 내고 연합회를 비난했다.
◇택시 회사 "연간 2조원 추가 부담 어렵다"
월급제는 택시 회사가 택시 운행 수입을 전액 관리하면서 택시 기사들에게 근무 시간에 따른 임금을 주도록 하는 내용이다.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택시 회사가 하루 1~5시간 근무에 대해서만 월급을 주는 대신, 택시 요금 수입 중 사납금을 제외한 돈은 기사가 갖도록 했다. 월급제로 바뀌면 근무 시간대로 기사에게 임금을 줘야 해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예컨대 부산의 택시 회사 A사는 기사 170여 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한 달 택시 요금 수입은 총 6억7800만원이고 이 가운데 회사가 사납금으로 5억1600만원을 갖는다. 그리고 이 사납금에서 기사 1인당 120만원씩 월급을 준다. 사납금을 제한 나머지 1억6200만원은 택시 기사들이 나눠 갖는다. 1인당 평균 90만원 정도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택시 기사는 월 210만원 정도 수입을 갖게 된다. 월급제를 도입하게 된다면, 12시간 근무 기준으로 월급제를 시행할 경우 최저임금을 적용한다고 해도 월급이 320만원이 된다. 택시업계는 여기에 4대 보험료, 부가세 등 인상분을 고려하면 한 달에 1인당 160만원 정도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추산한다. A사의 경우 연간 32억원이 넘는 부담이다.
전국 법인 택시 근로자 10만5000명으로 따지면 추가 재정이 한 달에 1700억원, 연간 2조원에 달한다. 연합회 관계자는 "월급제에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시행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두고 법안을 통과시키자는 것"이라며 "아무런 조치 없이 법안부터 통과시키면 결국 택시 회사도 망하고 회사에 속한 기사들도 망하게 된다"고 했다.
◇택시노조 "약속대로 법안부터 통과시켜라"
전국 13만 택시 기사가 소속된 양대 노총 택시노조는 월급제 시행 약속을 지키라고 주장하고 있다. 택시 회사 경영 사정을 고려하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지만, 그 문제는 법안부터 통과시킨 다음에 실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택시 회사들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플랫폼 택시 운영 등 '당근'은 챙기고 월급제 약속은 지키지 않으려 한다고 비판한다. 월급제를 시행하면 근무 태만이 늘어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디지털 운송기록장치, 실시간 택시 운행 정보 관리 시스템이 구축돼 근로시간과 영업 실태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노총 소속 택시노조 관계자는 "지금까지 사납금제 폐해로 생활고를 겪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택시 기사가 10명이 넘는다"며 "27일 월급제 법안 통과가 무산되면 총궐기대회를 열고 추후 파업까지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월급제 지원하게 될 수도
택시 회사와 노조 모두 월급제 시행을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 불똥은 결국 정부로 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월급제 도입을 위한 지원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택시업계에선 민노총과 한노총이 손을 잡고 정부를 압박하면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지원 방안을 내놓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민 세금으로 택시업계 배를 불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