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우 서울대 교수가 지난 5일 토르드라이브의 자율주행차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혼잡한 서울 도심에서 3년간 6만㎞를 무사고로 달려왔다. 지난 12년간 자율주행 기술을 연구해온 그는 다가올 세상을 먼저 살고 있는 셈이다. 서 교수는 "자율주행차 시대를 앞두고 운전자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며 "두려워하지 말고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마음으로 변화의 파도에 올라타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자율주행차를 가장 오래 연구해온 공학자에게는 자가용이 없다. '공대생들의 멘토'라는 서승우(55)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지하철 낙성대역에서 내려 연구실까지 40분쯤 걸어서 출근한다. 차가 없는 이유를 묻자 "자율주행 기술을 완성할 때까지 운전대를 놓기로 했다"며 "덕분에 운동도 된다"고 답했다. 그렇게 생활한 지 5년째다.

지난해 국내에서는 교통사고 21만7148건이 발생해 3781명이 사망하고 32만3036명이 다쳤다. 보행 중 사망자 비율(39.3%)은 OECD국가 평균(19.7%)의 2배나 된다. 서 교수는 "교통사고 원인을 분석하면 95%가 인간의 실수"라며 "사고 직전 3초를 '결정적 시간'이라 하는데, 자율주행차는 돌발 상황에서 사람과 달리 위험을 빨리 인지하고 대처해 사고를 막거나 줄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에 제자들과 '토르드라이브(ThorDrive)'를 창업했다. 자율주행차 스타트업으로 지난해 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자율주행 택배 서비스를 시작해 주목받았다. 올가을이면 무인(無人) 자동차가 고객 집까지 물건을 배달하는 풍경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이마트는 토르드라이브와 함께 자율주행 배송 서비스를 시범 운영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지난 5일 서울 상암동. '임3720' 임시 번호판을 붙인 자율주행차에는 '당신의 인공지능(AI) 운전기사'라고 적혀 있었다. 물체를 탐지하고 위치를 인식해 상황을 판단하는 센서(레이저 스캐너)와 위성 항법 장치(GPS) 안테나, 레이더와 카메라 6대를 장착했다. 2009년부터 서울대 지능형 자동차IT연구센터장을 맡아 자율주행차 '스누버'를 개발하고 운용하며 기술과 경험을 쌓은 서 교수는 "자율주행을 응용할 분야를 찾다가 3~4년 전부터 '배달'로 방향을 잡았다"고 했다.

"목표의 70%까지 올라왔다"

자율주행 기술은 인간이 차량을 모두 제어하는 '레벨0'부터 인간의 개입 없이 AI가 100% 운전하는 '레벨5'까지 모두 6단계다. 서 교수는 "토르드라이브는 여의도를 비롯해 혼잡한 서울 도심을 3년간 6만㎞ 무사고로 주행했다"며 "레벨4(특정 지역이나 상황에서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는 것)가 목표인데 현재 이 단계의 70%쯤 올라온 것 같다"고 했다.

-왜 하필 배달인가요.

"당시 다른 업체들은 승객 운송용 자율주행차를 개발하고 있었어요. 그 시장에 뒤늦게 뛰어드느니 물건 배송으로 진로를 정했습니다. 복잡한 도시에선 사람보다 물건을 실어 나르는 시장이 더 빨리 열릴 거라고 예측했지요. 더 안전하고 효율성도 높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 이름에 천둥의 신 '토르'를 붙였는데.

"마블 캐릭터 토르를 제가 좋아해요. 일단 전기와 관련이 있고(웃음), 하늘을 날아다니며 힘도 세잖아요."

-듣고 보니 토르의 망치도 자율주행(?)이군요.

"하하하. 그런 거죠. 주인 의지에 따라 망치가 우주를 돌아다니며 일을 해주니까요."

-자율주행차는 대중이 AI를 가장 먼저 체험할 수 있는 기계입니다. 고령 사회가 되면서 교통사고는 더 늘어날 테고요.

"고령 운전자는 인지 기능과 운동 기능이 떨어지니까요. 반응할 시간을 벌어주고 생명을 구해주는 게 자율주행 기술입니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CES)에 다녀오셨습니다.

"자율주행차는 더 이상 기술 문제가 아닌 것으로 이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자동차 전시관에선 응용과 서비스 관점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였어요. 몇몇 업체는 시내에서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운영했고요."

-단도직입으로 묻겠습니다. 토르드라이브는 세계적으로 어떤 수준인가요?

"레벨5에 진입한 자율주행차는 아직 없습니다. 레벨4 구간에서는 구글이 가장 앞서가고 저희는 열심히 따라가는 중이에요.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은 극복했는데 길을 막고 공사를 한다든가 드문 경우의 수까지 테스트해야 하는 셈입니다. 방금 70%쯤 왔다고 했는데 공학적 제품을 만들 땐 마지막 오르막이 늘 어려워요. 남은 30%가 난코스겠지요."

-우리는 못 하는데 구글은 하는 기술엔 무엇이 있나요.

"구글 자율주행차는 구급차를 구별할 수 있대요. 카메라와 사이렌 소리로 인식합니다. 구급차가 지나갈 땐 멈추거나 길을 비켜주는 식이죠. 저희는 소리로 특징을 포착하는 기술은 확보하지 못했어요."

공부 잘하는 학생들 보수적이고 모험 기피

서 교수는 대학원 신입생을 뽑을 때 성적표를 보지 않는다. 수재 소리를 들으며 서울대 공대에 들어온 학생들에게서 단점을 많이 발견한다고 했다. 시험은 잘 보지만 모험심, 끈기, 열정, 팀워크, 배려심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을 겪어보니 지적 능력이 좀 떨어져도 노력과 열정으로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더라"고 했다.

-성적이 아니라면 선발 기준이 뭡니까.

"면접하고 느낀 대로 뽑아요. 열정과 의지가 있는지 눈여겨봅니다. 적극적인 학생들은 어려운 상황도 이겨내더라고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나요?

"그들은 유치원부터 줄을 서서 들어가 험한 입시 경쟁을 통과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너무 조심스럽고 모험을 기피해요.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고 공대 다니다 의대로, 로스쿨로 가는 경우도 잦아졌어요. 스타트업에 도전하겠다는 학생은 드물어요."

-왜 그럴까요.

"조심스럽고 보수적이고 모험을 피하는 게 입시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 보호 체계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학생들을 어떻게 이끄나요.

"자극을 줍니다. 저 스스로가 참고할 모델이 되나 봐요. 교수는 안정된 직업일 텐데 남이 하지 않는 일을 저질렀잖아요.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 싶겠지요. 지능형 자동차IT연구센터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기가 연구한 것을 차에 실어 돌려봐야 합니다. 자율주행차를 타고 하루 10시간 돌아다닐 수도 있어요. 그러다 체질이 야전적으로 바뀌고 작은 성취감도 맛보게 됩니다. 이론이 아니라 실전으로 배우는 거예요."

일을 하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서승우 교수는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자율주행차 연구를 시작하고 기반을 닦은 공학자로서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 교육이 풀어야 할 큰 문제로 대학과 사회 사이의 단절을 꼽았다. 그는 "졸업해 학교 문을 나서기 전까지 사회문제를 발굴하고 해법을 고민하거나 실전 경험을 쌓을 기회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교수님이 쓴 책 '아침 설렘으로 집을 나서라'에 이런 문장이 있더군요. 인생의 성공 방정식은 '작은 성공의 각인을 통해 큰 성공을 성취하는 내면 프로그램의 재설계'다.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얘기예요. 작은 성공을 틈틈이 경험하며 묘미를 느끼면 용기와 자신감이 생깁니다. 큰 성공에 도전하는 디딤돌이 되지요."

―서울대 재학생 중 20~30%는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힐링이 해결해주는 현실 문제는 없어요. 위로는 달콤하지만 유효기간은 몇 시간에 불과합니다. 인생의 롤러코스터에 다시 올라타 당면한 문제를 헤쳐나가야 하지요. 차이를 만드는 건 '작은 용기'입니다."

―인생에 어떤 전환점이 있었습니까.

"10년쯤 지난 일입니다. 신문을 구독하면 자전거를 주던 시절에 그걸 타고 서울대 순환도로를 두 바퀴나 돌았어요. '변속기도 없는 싸구려 자전거로는 어림없다'고 다들 말렸는데 제가 해낸 거예요. 작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한계를 예단하면 안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지요. 학생들에게도 말합니다. 밑지는 셈 치고 한번 해보라고. 그래야 잠재력을 알게 된다고."

―실망이나 좌절도 겪었나요?

"서울대 부임하자마자 제 전공(컴퓨터 네트워크에 들어가는 고속 스위칭 기술)이 시장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새 연구 분야를 찾다 자동차에 끌렸지요. '기계공학 전공도 아닌데 웬 자동차냐'며 무시당하고 '자동차 바퀴가 4개인 건 아느냐'는 조롱도 들었어요. 연구 제안서도 번번이 떨어졌고요. 산에 오르려면 구부러진 길도 가고 바위도 타야 하듯이 그런 과정이겠거니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AI 시대가 던지는 철학적 질문

토르드라이브는 지난해 미국에서 먼저 상용화를 시작했다. 한국에는 자율주행차 관련 법규가 정비되지 않았고, 차량 공유도 좌초할 만큼 규제 장벽이 높은 탓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 교수는 "미국 진출에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그게 뭐였나요?

"한국에는 저희가 경쟁하거나 벤치마킹할 자율주행 연구 집단이 없습니다. 실리콘밸리에는 수십 업체가 있고요. 비교하면서 배우고 기술을 성숙시킬 기회가 많으니 건너간 거예요."

토르드라이브의 택배용 자율주행차가 지난해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의 매장 앞에 주차돼 있다.

―캘리포니아는 자율주행차 규제가 가장 적은 곳으로 들었습니다만.

"캘리포니아에선 자율주행차로 배달하고 돈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애리조나, 텍사스, 미시간, 플로리다에서는 이미 유료 서비스가 진행 중이고요. 저희도 그쪽 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입니다. 정면 대결하러 나갔는데 제대로 인정을 못 받거나 패전투수가 돼 돌아올 순 없잖아요. 조금만 게을리하면 경쟁에서 뒤처질까 봐 불안하고 긴장하곤 합니다."

―올 하반기에 이마트와 택배 서비스를 하는데.

"이마트 매장에서 이를테면 아파트 경비실 앞까지 물건을 배달합니다. 한시적 실험이고요. 자율주행차가 보편화되기 전에 고객 반응을 살피고 불편을 개선하자는 취지입니다. 자율주행차가 아파트로 물건을 실어가고 거기서부턴 다른 로봇이 현관문까지 옮겨주는 방식도 궁리해볼 수 있어요."

―현행법상 자율주행차라도 사람이 운전석에 앉아 있어야 하죠?

"네.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우리 삶을 바꿀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습니다. 출퇴근하는 1시간 동안 운전대를 놓고 일을 하거나 영화나 책을 보거나 잠깐 눈을 붙여도 되니까요. 자율주행차와 공유 경제가 만나면 주차장도 필요 없어집니다."

―지난해 말 미국에선 만취 상태로 운전석에서 잠든 운전자가 음주 운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당시 테슬라 차량은 자율주행 모드였고요. 운전자는 "자율주행차를 타고 있었고 나는 운전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습니다.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앞서 운전자를 새롭게 정의해야 해요. 여러 자율주행 단계에서 운전자의 역할에 대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의무 사항을 어기면 차량 운행을 정지시킬 수 있는 기술도 마련해야죠."

―자율주행차가 사고를 냈다는 소식도 가끔 접합니다. 대중은 인간의 실수는 받아들이는데 기술적 결함 때문이라면 반응이 달라져요. AI 시대에 생길 수 있는 이 문제, 철학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1만번 실험해서 안전하더라도 1만1번째에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선 기술 수준과 안전성을 100%에 가깝게 높여야죠. 부족한 부분은 보험과 같은 사회제도의 협조를 받아야 합니다."

―정부에 바라는 점이라면.

"서비스는 서비스고 기술은 기술입니다. 국산 기술이 없어도 서비스를 못 하는 건 아녜요. 자율주행에 국산 부품까지 결합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서비스를 구현하는 이른바 '보텀 투 톱(bottom to top)' 방식을 고집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정관념으로 훼방하지 말고, 유연하게 접근하면 좋겠어요. 실리콘밸리는 새로운 기술이나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어 자율주행의 성지가 된 겁니다. 우리도 그런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죠."

―대중은 창의적 생각을 우러러 보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합니다. 자율주행차에도 기대와 근심이 섞여 있고요.

"익숙한 틀을 벗어나야 할 때는 늘 두려움이 따르지요. 그 문턱을 넘어서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변화는 밀려오기 마련이에요. 파도타기를 하듯이 기회를 얼마나 잘 이용할 것인가 하는 관점이 중요해요. 선택 기로에 설 때 '지금 이걸 하지 않으면 10년 뒤 후회할까? 선택하면 내가 몇 배 더 성장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던져보기 바랍니다."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은 2025년 자율주행 시장 규모를 420억달러(약 46조6000억원)로 전망한다. 우리 정부는 자율주행차 시대를 앞두고 운전자 개념을 수정할 계획이다. 보험 제도 개편도 불가피하다. 도로교통공단은 AI 운전면허제를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