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8일 "예타(예비 타당성 조사) 제도는 유지돼야 하지만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국가 균형 발전' 명분을 내세워 24조원 규모의 대형 국책 사업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친여(親與) 성향 시민단체들은 물론이고 여권 내부에서도 "과거 토건 국가로의 회귀" "전형적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 시·군·구 기초단체장 초청 오찬에서 "대규모 예타 면제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다"면서도 "국가 균형 발전과 지역 혁신 성장을 위한 산업 기반이 전국 곳곳에 단단하게 구축될 것"이라고 예타 면제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예타 면제에 대한) 우려를 유념하면서 예타 면제 대상 사업을 지자체와 협의해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하고 지역 간 균형을 유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앞으로도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예타 면제를 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또 다른 경기 부양책으로 '지역 밀착형 생활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추진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모든 시·군·구에 작은 도서관이 1개씩 들어서고, 장애인 체육 시설 30곳을 포함해 160개의 국민체육센터를 설치할 것"이라며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면서 지역 내의 균형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활용해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작년 생활 SOC 추진 계획을 밝히면서 "과거의 대규모 토목 SOC와 차별화해 생활 SOC라고 부른다"고 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규모 토목 SOC는 예타 면제를 통해 추진하면서 생활 SOC 사업도 병행하는 상황이 됐다. 일자리와 경기 부양을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평가와 함께 내년 총선용이라는 비판이 함께 나오고 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226곳 중 서울 노원구 등 11곳을 제외한 215곳의 단체장이 참석한 이날 간담회에서 시장·군수·구청장들은 지역 민원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강임준 군산시장은 "정부가 작년 4월 군산을 고용 위기 지역으로 지정한 것은 감사하지만, 여전히 지역의 고용 상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지정 기간 연장이 절실하다"고 했다. 김영만 경북 군위군수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구 공항 이전을, 이동권 울산 북구청장은 공공 산후조리원 건립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지난달 기초연금의 지자체 부담을 낮춰 달라는 서한을 보냈던 정명희 부산 북구청장은 "재정 여건이 열악한 지자체는 기초 수급자 생계급여 수준인 90%로 상향 조정해 달라"고 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고용 위기 지역 연장은 현행법으로도 검토될 수 있다"며 "대구 군 공항 이전은 조속하게 마무리되도록 독려하겠다"고 답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농담조로 "과거 국회의원을 하셨던 분이 서울에서 구청장을 하셔서 '왜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구청장을 하시느냐'고 물었더니 '이건 비밀인데 국회의원보다 구청장이 더 좋다'고 하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는 "저도 지자체장을 해봤는데 일자리와 규제 혁신 등 의외로 지자체 차원에서 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청와대 방문에 앞서 기초단체장들은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행정안전부 주최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국정 설명회'에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도 단체장들은 정부에 다양한 민원을 했다. 최승준 정선군수는 정부가 정선 가리왕산 알파인 스키 경기장의 원상 복구 방침을 재고해 달라고 했다. 최 군수는 "군민이 평창올림픽 1주년 행사장에 상여를 보내고, 여성 군의원들이 삭발 시위를 계획할 정도로 반발이 크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강원도와 정선군이 시설을 존치한 뒤 어떤 식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체적 청사진이 명확하게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