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1일 리커창 총리 등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과 전국 각 성(省) 서기·성장, 중앙부처 장·차관과 고위 장성 등 당·정·군의 핵심 간부 수백 명을 긴급 소집해 이례적 강도로 중국이 당면한 위험과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회의는 중국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8년 만에 최저인 6.6%를 기록했다는 발표가 나온 날 소집됐다. 미국과의 전방위 마찰, 급속한 내수 경기 냉각, 그로 인한 사회 불안이 중첩되며 올 한 해 시 주석의 리더십을 시험하는 난관들이 잇따를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에서, 시 주석이 당·정·군 간부들을 상대로 만반의 준비를 독려하며 기강을 다잡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22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전날 베이징의 중앙당교(공산당 최고의 간부 교육기관)에서는 '지방과 중앙 핵심 지도자 및 간부 세미나'가 나흘 일정으로 개막했다. 이 세미나는 매년 열리지만 특히 올해는 주제가 '영역별 중대 위험의 예방 및 제거'였다. 시 주석은 3000여 자 분량의 개막 연설에서 "정치, 이데올로기, 경제, 과학기술, 사회, 외부 환경, 당 건설 모든 면에서 중국은 위험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21차례나 '위험'이라는 표현을 쓰며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시 주석은 특히 "우리는 '블랙스완'(검은 백조) 사건을 고도로 경계하고 '회색 코뿔소' 사건을 철저히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블랙스완은 발생할 확률은 극히 낮지만 일단 나타나면 큰 충격을 주는 위험을, 회색 코뿔소는 뻔히 보이지만 실제 위협하는 단계가 되기 전까지는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는 위험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부동산 시장 거품, 위안화 가치 절하로 인한 자본 유출 위험, 금융기관의 부실 대출 증가를 경제 안정을 위협하는 3대 회색 코뿔소로 꼽는다. 시 주석이 공개 연설에서 이 두 표현을 직접, 그것도 한꺼번에 거론한 것은 이례적이다.
시 주석은 연설에서 미·중 무역 전쟁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다. 그러나 "세계의 격변이 심화되고 국제사회의 동요 및 위험 요소가 증가하면서 중국의 외부 환경은 복잡하고 엄중하다"며 참석자들을 향해 "위험을 예방·제거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능동적인 전투를 준비하라"고 요구했다. 또 "과학기술은 국가 안보에 중요한 부분"이라며 "기술 혁신과 국가급 실험실의 설립을 가속화하고 인공지능, 유전자 편집, 자율주행, 드론, 로봇 등과 관련된 입법에 속도를 내라"고 주문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이 '중국 제조2025'와 화웨이의 5G 통신 기술을 겨냥한 파상 공세를 펼치는 상황에서 시 주석이 과학기술 자립을 독려한 것"이라고 전했다. 시 주석은 또 공산당을 향해서도 "정신적 나태, 무능, 인민에게서 멀어짐, 소극적 업무 등의 위험이 엄중하다"며 "당은 장기 집권과 개혁 개방,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데 장기적이고 복잡한 시련을 맞았다"고 경고했다.
이번 회의가 갑자기 소집되면서 오는 3월 전인대(전국인민대표대회·국회 격) 개막을 앞두고 저마다 지방 인민대표대회를 열고 있던 각 성 지도자들은 회의 일정을 줄줄이 연기하고 급히 상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SCMP는 "이번 회의는 시진핑 주석이 집권 2기를 시작한 2017년 19차 당대회 직후 정점에 달했던 중국의 자신감이 지난 한 해를 거치며 바닥으로 추락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