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혁명' '최초의 민족 단합' '시대의 분기점' '저수지' '용광로'….

올해는 전국적으로 200만여명이 참여했던 사상 최대의 민족운동 3·1운동이 100주년을 맞는 해다. 역사·정치학자 등 전문가 10명에게 '3·1운동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했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민족의 독립을 약속한 '민주혁명'이었다"고 했다. 일제의 식민 무장 통치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우리 민족을 감옥과 사슬에서 구해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든 사건이었다. 김형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장(전 국회의장)은 '최초의 민족 단합'이라고 평가했다. 우리 역사에서 계층과 지역, 종교와 사상을 뛰어넘어 전(全) 민족이 하나로 단합했던 일은 3·1운동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민족운동의 '저수지'라고 했다. 국권 피탈 이후 일어났던 다양한 독립운동이 하나로 모여 거대한 운동을 이뤘다가 다시 다양한 갈래로 분화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민주공화정을 이룬 시민혁명'이라고 했다. 왕정·제정을 공화정으로, 전제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꿔 놓았다는 점에서 프랑스대혁명이나 신해혁명과도 같은 위치를 차지한다는 설명이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역사의 거대한 '터닝 포인트'라고 했다. 수천년 동안 군주에게 있던 주권을 국민에게 옮긴 일대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장은 보통 사람들이 스스로 일제 군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국민의 탄생'이라고 했다.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민족혁명의 꽃'이라고 했다. 근대화와 자주독립, 민주공화정 수립을 추구했던 근대사 속 거대한 혁명의 흐름 속에서 산봉우리를 이룬 곳이 3·1운동이었다. 박환 수원대 교수는 '시대의 분기점(分岐點)'이라고 했다. 군주의 죽음으로 시작해 임시정부의 공화정 수립으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박걸순 충북대 교수는 '피압박 민족의 독립선언'에 무게를 뒀다. 식민지 약소민족 중 처음으로 제국주의 타도의 기치를 세워 세계의 독립 투쟁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장규식 중앙대 교수는 전 인구의 30%를 차지했던 노비와 천민까지도 통합해 오늘날의 한국 민족을 탄생시킨 '용광로'였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