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송인으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다. 그 분이 한국정책방송원, KTV 원장을 하고 있을 때다. 한번은 청와대 특별감찰반에서 호출을 하더라고 했다. 특별감찰반에 갔더니, 대뜸 "지금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윽박지르더라고 했다. 참고로 특별감찰반은 청와대 경내(境內)에 있는 게 아니다. 청와대 쪽 효자동 삼거리를 향해 위로 올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창성동이 있고, 창성동에 정부 청사 별관이 있다. 바로 이 ‘창성동 별관’이 마치 몇 걸음 앞에서 청와대 입구를 지키는 ‘사대천왕상’처럼 사람을 불러다 족치기도 하고 협박도 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종용도 하고 그랬던 과거가 있었다.

그 방송인은 그대로 물러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적극적으로 저항하기로 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특별감찰반에서 전화가 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앞으로 당신들의 전화 통화를 전부 녹음하겠소. 나는 물러날 수 없소." 그랬더니 특별감찰반에서 오던 전화가 바로 중단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 방송인처럼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개는 어떤 개인적인 약점이 드러나는 순간, 이렇다 할 불평 한마디 못하고 바로 사표를 던지고 만다.

내가 어떤 장관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다. 그 장관이 임명되고 얼마 있지 않아서 저녁 자리를 함께 하게 됐다. 그런데 그 장관이 허심탄회하게 고백했다. "우리 부 산하에 공공기관이 수십 개가 넘는데, 기관장 중에는 대통령 선거가 끝났음에도 물러나지 않고 버티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내가 직접 찾아가서 대놓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어떻게 하는데요?" 그 장관이 말했다. "나는 노골적으로 했다. ‘형, 왜 이래? 창피 당하고 싶어? 그쪽에서 선거 졌잖아. 그냥 내려와.’ 이랬다. 그러면 금세 알아들었다."

기가 막힌 일이다. 환경부가 ‘산하 기관장 동향 파악 문건’ 작성을 시인했다. 이른바 ‘찍어내기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한 발짝 더 나아가 그 일이 청와대 지시라고 했다. "이번 문건은 (청와대) 민정에서 요청이 들어와 작성한 것이지, 이게 어떤 용도로 활용될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김태우 수사관은 "환경부가 이미 작성한 걸 줬다. 내가 (문건을) 요청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앞뒤가 어찌 됐든 청와대가 개입돼 있다는 점은 적나라하게 확인된 것이다. 이날 환경부는 "문건의 윗선 보고는 없었다"고도 했다. 야당이 제기하는 ‘문재인 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전부 김 수사관 개인 일탈로 몰아가는 것이다. ‘동향 파악 문건’을 작성했다는 것은 앞선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에 대해 ‘찍어내기 감찰 자료’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한 신문에 보도된 환경부의 설명을 더 들어보겠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인 김태우 수사관으로부터 지난 1월 중순쯤 환경부 감사담당관실에 환경부 및 산하기관의 현재 동향을 파악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김 수사관의 요청에 따라 대구환경청의 환경영향 평가 관련 직무 감찰 결과, 환경부 출신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의 동향 등 3건의 자료를 정보제공 차원에서 윗선에 보고 없이 1월18일 김 수사관이 환경부를 방문했을 당시 제공한 바 있다."

자, 이런 식으로 청와대가 부처별로 사퇴할 인사들을 선별했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을 보고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소문에 따른 동향 정보가 나와 있어 특정 인사의 약점을 파악해 이른바 찍어내기 용으로 사용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말이 ‘동향 정보’이지 사실상 ‘사생활 뒷구멍 캐기’였을 것이다. 문화일보에 보도된, 해당 인사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어보면 정말 음습한 뒷공작이 드러난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 "올해 1월이 임기였는데 지난해 11월에 비연임(非連任) 통보를 받았다. 내가 안 나갈까 봐 환경부 감사관실에서 동향 보고를 한다는 등 겁을 줬고, 그래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 "사퇴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는데 청와대에서 사표가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와서 지난 3월에 사표를 썼다. 환경부 감사담당관실에서 올해 감사가 나왔을 때 '사표 쓰는 문제에 대해 협조를 안 하느냐'는 말을 들었다."

자, 이런 일은 과거 정권에서도 늘 반복되던 일일까. 아니면 지금 문재인 정권에서 유별난 일일까. 자, 이런 일은 환경부에서만 일어나고 있을까, 아니면 지금 정부의 거의 모든 부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일까. 특감반이 전국 330개 공공 기관장과 감사들의 임기 등이 적힌 리스트를 만들어 정치 성향과 세평(世評) 등을 같이 기록했다는 김 수사관 주장도 있다. 다시 묻는다. 이런 일이 환경부뿐일까. 판단은 구독자 여러분께 맡기겠다. 다만 지금 정권은 "그러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하면서 표를 얻은 정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인 작년 4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유린한 국가 폭력"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자, 이쯤 되면 "청와대에 보고 된 적 없다"고 발뺌만 할 것이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육성으로 국민들께 해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