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총리의 연하장을 보고 질문한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연하장을 보내왔다. 나한테만 보낸 개인적인 연하장이 아니라 언론인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에게 인쇄해서 보낸 연하장이다. 이낙연 총리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다. 누구보다 명석한 머리로 현명한 사리 판단을 잘 하는 인물이라고 정평이 나 있다. 앞선 다른 총리들이 보냈던 연하장은 인사말이 대개 늘 보던 문구였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게 됐다’, ‘새해에는 가정에 만복이 깃들기를 바란다’, 대략 그 정도였다. 그런데 이낙연 총리의 연하장은 달랐다. 이 총리의 개인적인 정치 철학과 현 정부의 새해 국정 기조가 상당 부분 담겨 있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살펴보겠다.

먼저 첫 번째 구절을 보겠다. 이 총리는 ‘전쟁의 걱정을 딛고, 평화의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과연 그런가. 우리는 2018년 전쟁의 걱정을 극복했는가. 평화가 가시권에 들어와 확실히 보이는가. 이 총리의 연하장을 받은 날,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사임했다. 매티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는데, 그 핵심은 ‘미국의 힘’이 ‘강한 동맹’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 매티스는 시리아에서 미군 철수를 반대했었다. 그런데도 트럼프가 미군 철수를 결정하자, 매티스가 항의서한을 공개하고 사임해버린 것이다.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리아에서 미군 철수를 독단으로 결정한 ‘장사꾼 외교 책략가’인 트럼프는 한미 동맹과 주한 미군 철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트럼프의 머릿속에 ‘동맹’이라는 신념과 국정 철학이 들어있기나 할까. "주한미군은 3차 대전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던 매티스 장관이 떠난다면 한미동맹과 주한 미군은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 선임부소장은 한 국내 일간지 기고에서 "내년 2019년에 2차 미북 정상회담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마디로 "실질적인 성과"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이 ICBM을 쏘지는 않겠지만, 미북 긴장은 높아질 것이고,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 실험, 혹은 미국이 위성으로 알아차릴 수 있게 일부러 핵 활동을 벌일 수도 있다고 봤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드디어 ‘못 한다’는 여론이 ‘잘 한다’는 여론을 앞질렀고, 앞으로 계속 하락할 것이다.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 소장은 한 인터뷰에서 "올해는 안보 참사의 해다. 간첩 오라고 길 열어줬다"고 했다. 송대성 전 소장은 ‘9.19 남북 군사합의’를 지목했다. 군사 분야에서 핵심 중에 핵심은 ‘북한 비핵화’인데, 9.19 군사합의에는 ‘북한 비핵화’가 단 한마디도 없다. 대신 전방에 GP 없애고, 임진강 근처 철책선 없앴다. 간첩 내려오라고 길 닦아준 셈이다. 핵폭탄이라는 흉기를 쥔 강도는 흉기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는데, 우리는 대문 앞에 경호원 수위를 없애고, 마당 뒤편으로 물러나 버렸다.

송대성 전 소장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진짜 실체를 몰랐거나, 남북공조로 위장 평화를 만들어보고자 했거나 둘 중 하나인데, 개인적으로 후자 쪽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걸 쉽게 풀이하면, 김정은에게 속았거나, 아니면 김정은과 짜고 우리 국민을 속였거나 둘 중 하나인데, 후자 쪽일 것이란 뜻이다.

이 총리는 ‘전쟁의 걱정을 딛고 평화의 희망’을 보았을지 모르지만, 적지 않은 국민들은 연말부터 교착 상태에 빠진 한반도 안보에 걱정이 더 늘어만 가고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보다 민족공조를 우선시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이기에 더욱 걱정이다.

다음을 보겠다. 이낙연 총리는 연하장에서 ‘사람 중심의 번영으로 가려는 여러 노력이 시작됐다, 그 길은 우리가 가야할 길이다’고 했다. 여기서 ‘번영으로 가려는 노력’, 그 자체에 시비 붙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사람 중심의 번영’이라는 이 총리의 생각에는 한마디 묻지 않을 수 없다. 혹시 이 총리가 ‘사람 중심’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기업 중심의 번영’ 그리고 ‘시장(市場) 중심의 번영’에는 소홀히 하거나 반대한다는 뜻이 숨어 있는가.

‘번영’을 이루려면 경제가 잘 돼야 하고, 경제가 잘 되려면 기업의 성장 동력이 살아나야 할 터인데, 그리고 그 바탕에는 자유 시장 경제에 대한 존중과 믿음이 있어야 할 터인데, 이낙연 총리가 이끄는 우리 정부는 여전히 골고루 나눠주는 배분에 더 신경을 쓰면서 ‘세금 퍼주기 성장’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인가. 그게 ‘사람 중심’인가.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이고, 총리는 ‘사람 중심’인가. 연하장에 ‘사람 중심’이라고 썼지만 사실은 ‘포퓰리즘 중심’ 정책을 계속 해나가겠다는 뜻인가.

이낙연 총리의 연하장 뒷부분에 보면 ‘고루 누리는 번영’이란 표현이 또 나온다. ‘흔들림 없는 평화와 고루 누리는 번영을 향해 착실히 가겠다’고 했다. 앞서 말한 ‘사람 중심 번영’과 ‘고루 누리는 번영’은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고루 누린다’는 말 속에는 수정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사회주의 경제의 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다. 물론 우리 사회가 빈곤 계층, 그리고 소외 계층에 대한 배려와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는 데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그러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한국은행 통계도 못 보았는가. 사람들이 누리는 번영에는 개인마다 능력에 따른 차이, 노력에 따른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고루 누리는 번영’을 목표로 세우고, 능력과 노력에 따른 차이를 무시하는 쪽으로 국정을 이끌고 가겠다는 뜻인가.

지금까지 이낙연 총리의 연하장을 받아들고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을 말했다. 이런 생각에 공감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이 총리도 유념하리라 믿는다. 이 총리의 연하장에 나오는 표현대로, 연말연시, 마음도 몸도 분주하시겠지만, 가족과 이웃을 살피시며, 흐뭇하게 지내시길 바란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