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네 거의 모든 거리마다 베네수엘라 부자들이 최근에 사들인 빌딩이 한 채씩은 있어요. 미국 마이애미 소재의 투자회사가 사들인 것처럼 꾸미지만 빌딩 매입 대금은 항상 베네수엘라에서 송금되죠."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명품 가게와 고급 아파트가 즐비한 부촌(富村)인 살라망카 지구를 가리켜 현지 부동산 전문가가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나라가 거덜나자 부자들부터 돈을 싸들고 탈출하기 시작했다. 파탄 지경의 경제에다 살인적인 물가로 신음 중인 베네수엘라의 부호들이 재산을 빼돌려 스페인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NYT가 29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스페인에 거주하는 베네수엘라인은 28만명에 달한다. 그중 절반이 최근 2년 사이에 건너온 것으로 추정된다. NYT는 살라망카 지구에서만 베네수엘라인 소유의 고급 아파트가 7000채가 넘는다고 전했다. 작년 한 해 마드리드의 집값 상승률은 17%에 달할 정도로 뜨거웠는데, 베네수엘라 '큰손'들의 투자 열기가 폭등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안토니오 레데스마 전 카라카스 시장을 비롯해 정치인들도 대거 스페인으로 넘어오고 있다.
베네수엘라 부자들이 급격히 유입되자 스페인 정부는 자금 출처를 조사하고 있다. 스페인 경찰은 지난 4월 우고 차베스(2013년 사망)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개인 간호사였던 클라우디아 디아즈를 체포했다. 디아즈는 2015년 마드리드에 180만유로(약 23억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돈세탁을 한 혐의를 받았다.
스페인에 베네수엘라 부자들이 밀려드는 이유는 2013년 '황금 비자' 제도가 신설된 것이 결정적이다. 50만유로(약 6억5000만원) 이상의 부동산을 매입한 외국인에게 스페인 정부가 즉시 영주권을 주는 제도다. 같은 스페인어권이라 이질적이지 않다는 점도 작용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베네수엘라 통화 가치가 급락하자 '황금 비자'를 활용해 안정적인 유로존(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에 재산을 옮겨두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고 했다. NYT는 "스페인에 넘어온 베네수엘라 사업가들이 고국의 친지들에게 스페인으로 이주할 것을 권유하면서 이들의 세력이 계속 확장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