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 시각) 영국 왕실의 해리(33) 왕자와 미국 여배우 메건 마클(36)의 결혼식이 열린 영국 윈저성 안의 성 조지 성당. 정오가 되자 신부 마클을 태운 롤스로이스 승용차가 성당 앞에 멈췄다. 순백색 드레스를 입은 마클이 차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자 몰려든 인파가 환호를 보냈다.

성당 입구에 선 마클은 합창단이 노래를 시작하자 중앙 통로를 혼자 행진하기 시작했다. 영국 왕실 결혼식에서 신부가 아버지 등 남성의 호위를 받지 않고 입장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신부 입장부터 왕실 결혼식의 전통을 깨트린 것이다. 앞으로 걸어나가던 마클은 일반 하객과 왕실 가족을 구분하는 중간 지점에서 시아버지가 될 찰스 왕세자를 만났다. 이 지점부터 마클은 찰스 왕세자의 팔짱을 가볍게 끼고 다시 행진했다. 하지만 찰스 왕세자가 신부를 신랑에게 '넘겨주는' 장면은 없었다. 근위 기병대 제복을 입고 기다리던 해리 왕자와 가까워지자 마클은 찰스 왕세자에게 팔짱을 낀 오른손을 내렸고, 찰스도 자연스럽게 뒤로 빠졌다.

영국 왕실 해리 왕자와 미국 여배우 메건 마클이 19일(현지 시각) 영국 수도 런던 윈저성(城)의 성 조지 성당에서 결혼식을 마친 뒤 밖으로 나와 성당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이날 결혼식에서는 신부 입장 때 신부의 아버지가 신랑에게 신부를‘넘겨주는’절차 없이 마클이 스스로 해리 왕자의 손을 잡는 등 영국 왕실 결혼식의 전통을 깨는 파격이 이뤄졌다.

심장병으로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한 마클의 아버지를 대신해 찰스 왕세자가 일부 구간을 호위했지만 역할을 최소화했다. CNN은 "마클이 왕실 규범에 도전할 준비가 돼 있는 강하고 독립적 여성임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해리 왕자보다 세 살 많고 이혼 경험까지 있는 마클은 여성 인권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2014년 유엔 여성기구에서 추진한 여성의 정치 참여 보장 운동에 동참했고, 이듬해 베이징에서 열린 여성 콘퍼런스에서 "내가 여성이자 페미니스트라는 점이 자랑스럽다"고 연설하기도 했다.

마클은 남편에 대한 복종 서약도 하지 않았다. 영국 언론은 남편에 대한 복종 서약이 2011년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식에 이어 이번에도 생략되면서 왕실 결혼식에서 사라질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결혼식 설교는 영국 왕실 사상 처음으로 흑인인 미국 성공회 주교 마이클 커리 신부가 했다(왼쪽 위). 마클이 혼자 신부 입장을 하다 중간 지점에서 시아버지 찰스 왕세자의 팔짱을 끼고 행진하고 있다(왼쪽 아래). 결혼식을 마친 해리 왕자와 마클이 왕실 사륜 마차를 타고 윈저성 밖을 돌며 10만여 명의 시민에게 인사하고 있다(오른쪽).

마클은 신부 입장뿐 아니라 결혼식 곳곳에 자기 정체성을 심었다. 흑인 혼혈이라는 정체성이 도처에서 묻어났다. 결혼식 주례는 영국 성공회 수장인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맡았다. 그러나 설교는 흑인으로는 처음 미국 성공회 주교가 된 마이클 커리 신부가 맡았다. 마클이 직접 커리 신부에게 설교를 부탁했다고 한다. 영국 왕실 결혼식에서 미국인이 설교한 것도, 흑인이 설교한 것도 처음이었다. 커리 신부는 "사랑의 힘이 옛 세상을 새 세상으로 만들 것"이라는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사랑과 구원에 관한 말을 인용하며 설교를 시작했다. 커리 신부의 설교가 끝나자 흑인이 중심이 된 합창단이 미국 솔 음악인 '스탠드 바이 미(Stand by me)'를 불렀다. 첼로 연주자로 영국의 19세 신예 세쿠 카네 메이슨이 발탁된 것도 파격이었다. 역시 마클이 직접 전화를 걸어 연주를 부탁했다고 한다.

성 조지 성당 안에는 하객 600명이 초청을 받았다. 가수 엘턴 존과 제임스 블런트,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 배우 조지 클루니 등 유명 인사가 다수 참석했다.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테니스 스타 세리나 윌리엄스를 비롯해 흑인 유명 인사가 여럿 초청받은 것도 눈에 띄었다. 윈저성 바깥으로는 10만 인파가 몰려들어 결혼식을 축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