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씬한 금발의 사오정, 여자 삼장법사, 중국 옷을 입은 백인 요괴들….
세계 최대 동영상 서비스 넷플릭스에서 지난달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손오공'(Monkey: The New Legend)의 등장인물들이다. 주인공들이 요괴와 싸우며 서역을 향해 간다는 것은 원작 서유기(西遊記)와 같지만, 나머지는 모두 새로 만든 리메이크 작품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호주에서 제작될 때 백인 중심 세계관을 드러냈다는 구설에 올랐다. 손오공(멍키)만 태국 배우 카이 핸슨(Hanson)이 맡았을 뿐, 삼장법사와 저팔계(픽시)는 뉴질랜드, 사오정(샌디)은 호주 출신 배우가 맡으면서 이른바 '화이트 워싱(white washing)' 논란에 휩싸인 것. 화이트 워싱은 백인이 아닌 캐릭터에 백인을 캐스팅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지난해 일본 애니메이션 원작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에서 주인공 구사나기 모토코 소령을 스칼릿 조핸슨이 맡고, 마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티베트 남성이던 '앤시언트 원'을 틸다 스윈턴이 연기한 것과 맞물리면서 논란이 커졌다.
제작진은 "주요 배역의 피부색을 보면 아시아와 유럽, 뉴질랜드 원주민으로 다양하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오히려 "선과 악, 가족, 운명 같은 보편적 주제를 동서양 구분 없는 하이브리드적 세계에서 그려내며 전복적 시도를 했다"는 것. 방송 이후엔 삼장법사와 사오정에 여성 배우를 기용한 것에 대해 "성별(性別)에 대한 관습적 접근법을 깨뜨린 것이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1억명 넘는 가입자가 어떤 스토리와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빅데이터를 분석해 작품을 기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사오정은 팀 전체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갈등을 조율하는 캐릭터이고, 삼장법사는 육체적 능력은 없지만 팀 전체에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인데 최근 이런 캐릭터로 여성이 부상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했다.
국내 방송계 관계자는 "중국의 최고 인기 콘텐츠인 서유기가 21세기를 맞아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며 "이를 화이트 워싱이나 문화제국주의 같은 시각으로만 보는 건 편협하다"고 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서유기를 모티브로 제작한 '화유기'가 국내 방송 직후 넷플릭스를 통해 아시아 전역으로 공급되는 것도 서유기 원전이 가진 '힘'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넷플릭스 자본으로 제작되는 드라마 '킹덤' 역시 다른 나라 시청자들의 호감을 살 수 있도록 다양한 요소를 추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