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평창올림픽 여자 컬링 한국―미국 경기 중계에선 "더더더더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빗자루로 얼음을 문지르는 선수들을 보며 KBS 이재호 해설위원이 낸 소리였다. '컬링 아재'로 통하는 그는 이날 10엔드에서 한국 스톤이 바깥으로 밀려나자 최승돈 아나운서에게 "많이 긴장하셨어요? 손이 지금 얼음장같이 차요"라고 했다. 포털 댓글에 '남자끼리 손잡고 진행을? ㅋㅋ' 같은 글이 올라왔다. 해설 중 스톤 방향을 정확하게 맞히고선 "돗자리 하나 사달라" 너스레도 떨었다. 그는 본지 통화에서 "한국 팀이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손을 잡았다"고 털어놨다.
평창올림픽 해설 전쟁이 뜨겁다. 지상파 3사가 컬링·스피드스케이팅·쇼트트랙 등 한국 팀이 메달권에 있는 인기 종목 위주로 중복 중계를 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셋 다 같은 화면이니 진행과 해설의 묘미로 시청률에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MBC는 15개 종목에 18명으로 가장 많은 해설위원을 동원했고, SBS 14명, KBS 13명 등으로 진용을 꾸려 중계 경쟁에 뛰어들었다.
◇갓광배, 컬링 아재, 배갈 콤비
치열한 해설 전쟁의 와중에 '벼락 스타'들도 탄생했다. 지난 15일 스켈레톤 중계에선 "가가가가가가가갓" 소리가 화제가 됐다. 강광배 MBC 해설위원이 윤성빈 선수가 출발할 때 쏟아낸 응원 소리. 그 덕에 '갓광배'란 별명을 얻었다. 전직 스켈레톤 국가대표 감독으로 윤성빈 선수를 발굴했다는 그는 "스켈레톤은 마음으로 조종하는 경기" "스켈레톤처럼 고개를 숙일 때는 숙여야" 등 인성을 강조한 발언으로 이른바 '어록'까지 만들어졌다. 스피드스케이팅의 SBS 제갈성렬 해설위원은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500m에서 김민석이 동메달을 딸 것이라고 예측한 게 화제가 됐다. 그는 선수들이 코너를 돌 때마다 "헛둘헛둘"(하나 둘 하나 둘) 구호를 붙여 시청자들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2030으로 해설자 세대교체
이번 올림픽에선 해설자 세대교체도 이뤄졌다. 올림픽 직전까지 국가대표로 뛰던 선수들이 대거 해설위원으로 변신하면서다. 이화여대 3학년인 MBC 피겨 김해진(21) 해설위원이 최연소. 그는 여자 피겨 최다빈 선수 경기 때 "제 선수 생활 거의 전부를 최 선수와 함께했기에 기분이 남다르다"며 눈물을 흘렸다. 박재민(35) KBS 스노보드 해설위원은 비보이 출신 배우로 발음과 전달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착지에 실패한 선수에게 "웰메이드 드라마에 피니시가 좋지 않다"거나 "결말은 좋았는데 스토리가 없는 경기" 등 귀에 쏙쏙 들어오는 비유로 관심을 끌었다. 2014년 소치에서 '컬링돌'로 불렸던 이슬비(30) 선수는 SBS 해설위원으로 변신했고, SBS 쇼트트랙 조해리(32) 위원은 리포터 뺨치는 말솜씨로 '조해리포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말 한마디에 천당과 지옥
말실수로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지난 19일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김보름·박지우가 노선영 선수를 뒤에 떨구고 앞으로 나갈 때 제갈성렬 SBS 해설위원은 "지도자들은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게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은 반면 MBC는 "노선영의 연습 시간이 부족했던 점"을 이야기했다가 일부 시청자로부터 "팀웍의 문제점을 지적해야지 선수 연습 부족만 탓하면 어떡하냐"는 원성을 사기도 했다. KBS 이정수 해설위원은 지난 20일 여자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해설위원들도 같이 뛴 듯한 모습"이라는 캐스터의 말에 "아, 팬티를 갈아입어야 될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바이애슬론 등 일부 종목 해설위원들은 TV에 등장할 기회가 적어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기 경기 위주로 TV 중계가 진행되면서 이들 종목 위원들은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