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으로 노트북 단축키를 누르면서 동시에 오른손으로 태블릿PC 위로 전자펜을 움직여 순식간에 만화를 그려나가자 100여명의 관람객이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지난 27일(현지 시각) 프랑스 중서부 도시 앙굴렘의 한 전시장. 한국의 웹툰(온라인으로 보는 만화) 작가 전선욱(31)씨가 노트북과 전자펜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스노보드를 타는 남성을 그리는 모습이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자 프랑스 만화광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전 작가를 비롯한 한국 만화 작가들은 세계 최대의 만화 축제인 '앙굴렘 국제만화제'(1월 25~28일)를 찾아 한국과 평창 동계올림픽 알리기에 나섰다. 1974년부터 매년 1월 열리는 이 축제에는 20만명 이상의 만화 팬이 찾는다. 한국 작가들은 "유럽의 만화 강국인 프랑스에서도 한국 웹툰이 저변을 넓혀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네이버에 고교생들의 일상을 그린 '프리드로우'라는 인기 웹툰을 5년째 연재하고 있는 전선욱 작가는 "저와 제 작품을 알아본 프랑스 팬들의 사인 요청을 받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툴루즈의 한 대학에서 만화를 전공한다는 아드리앙 마르슈카(23)씨는 "프랑스에서는 원래 일본 만화가 인기를 끌었지만 한국 웹툰이 스토리가 탄탄하고 모바일 기기로 보기 편하게 만들어져 최근 마니아 층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5년 내리 앙굴렘 국제만화제에 참가한 김정기(43) 작가는 즉석 드로잉(밑그림 없이 실시간으로 그리는 그림)으로 단연 돋보이는 스타였다. 그가 즉석에서 갑옷을 입은 한국의 장수(將帥)를 그리자 관람객들은 눈을 떼지 못했다. 김 작가의 작품집은 90유로(약 12만원)에 달할 정도로 비싸지만 이번 축제 기간에 500권 정도가 팔려나갔다. 백영욱(47) 작가도 즉석 드로잉으로 평창올림픽을 상징하는 백호(白虎)가 아이스하키를 하는 모습을 그려 박수를 받았다.
프랑스에서는 2년 전부터 델리툰이라는 업체가 한국 웹툰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유료(일부 무료)로 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디디에 보르그 델리툰 대표는 "지난해 델리툰을 통해 한국 웹툰을 즐긴 프랑스어권 독자는 100만명에 달했다"며 "프랑스는 물론 벨기에, 스위스, 캐나다, 알제리, 모로코, 카메룬 등 전 세계 프랑스어권에서 독자 층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한국 웹툰을 보는 독자 75%가 모바일 기기로 만화를 봤다.
순정만화 작가로 이름을 날렸던 김동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은 "1998년 처음 앙굴렘 만화축제에 왔을 때에 비하면 20년 사이 한국과 한국 만화를 알아보는 사람이 놀랄 정도로 늘어났다"고 했다. 안종철 한국만화영상진흥원장은 "웹툰은 출판된 만화와 달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며 "IT에서 앞서가는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웹툰을 주력 수출 상품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