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A(69)씨 가족은 한 달 약 5만원으로 13명이 건강보험 혜택을 누린다. 월급 80만원을 받아 건보료로 매달 4만8960원을 내는 직장인 A씨가 배우자와 자녀 2명, 며느리 2명에 손자 7명까지 12명을 피부양자로 등록했기 때문이다. 현행 건보 제도는 직장가입자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가족은 피부양자로 인정해 건보료를 내지 않더라도 건보 혜택을 주고 있다.
서울에 사는 B(20)씨도 월 10만원 정도 건보료를 내고 조부모 2명, 부모 2명, 동생 9명 등 13명을 피부양자로 등록했다. C(48)씨 가족은 건보료 월 30만원 정도로 배우자와 부모 2명, 자녀 8명에 장인, 장모까지 13명이 건보 혜택을 받는다.
◇재산 1억원 넘는 피부양자 185만명
24일 국회 보건복지위 김상훈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피부양자를 10명 넘게 등록한 건보 직장 가입자가 78명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가운데 10명(12.8%)은 한 달에 건보료를 10만원도 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직장가입자 한 사람이 부양하는 피부양자는 평균 1.22명이며, 평균 건보료는 10만276원이다. 김상훈 의원은 "정당한 절차로 건보 혜택을 보는 건 문제 삼을 수 없지만 탈세나 재산 노출을 숨기려는 의도로 추정되는 사례에 대해선 철저한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 사정이 넉넉한데도 피부양자로 인정돼 '무임승차'하는 경우도 많았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재산이 1억원을 넘는 피부양자는 185만명으로 조사돼 2015년 165만명에서 1년 만에 20만명이 급증했다. 이 중 고액 자산가(5억~9억원 미만)는 같은 기간 6만9000명에서 8만3000명으로 1만4000명 늘었다.
주택을 2채 이상 보유한 피부양자도 2012년 137만명에서 2016년 141만명으로 늘었다. 특히 주택이 21채 넘는 '부동산 부자'인데도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 이들도 같은 기간 1960명에서 2822명으로 늘어났다. 한양대 경제학부 사공진 교수는 "피부양자 제도는 경제 능력이 부족해 직장가입자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가족에게 혜택을 나눠주자는 취지"라며 "소득이 충분한 사람이 혜택을 보는 경우가 늘어난다면 문제"라고 말했다.
◇피부양자가 21조7000억원 써
올 8월 기준 전국 건강보험 가입자는 5088만7000명인데 이 중 피부양자가 2041만6000명이다. 전체 가입자 10명 중 4명꼴이다. 지난해 피부양자에게 들어간 건보공단 급여액은 21조6963억원으로 전체 3분의 1 수준에 달한다. 정부는 소득이 연 4000만원을 넘거나, 재산이 과표 기준 9억원(형제·자매는 3억원)을 넘기면 경제 능력이 충분하다고 보고 피부양자 자격을 박탈하는데, 이 기준이 너무 느슨하다는 지적이 그간 제기돼 왔다.
보건복지부는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내년 7월부터 피부양자 기준을 엄격하게 하는 내용의 부과체계 개편안을 시행한다. 하지만 연간 소득 기준을 내년부터 3400만원, 2022년부터 연 2000만원으로 강화하는 개편안이 시행돼도 전체 피부양자가 35만명 줄어들 뿐이다. 보건사회연구원 신현웅 연구위원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국민 정서상 어려움이 따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노후 소득 보장이 개선되면 부모도 피부양자에서 배제하는 적극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