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김정남 살해 혐의로 기소된 인도네시아 국적 시티 아이샤(왼쪽)와 베트남 국적 도안 티 흐엉(오른쪽)이 2일 법정에 들어서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 암살 사건 재판이 2일(현시 시각)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건 발생 8개월 만이다.

뉴스트레이츠타임스 등 말레이시아 언론에 따르면 샤알람 고등법원은 이날 오전 9시 김정남 살해 혐의로 기소된 인도네시아 국적 시티 아이샤(25)와 베트남 국적 도안 티 흐엉(28)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이들은 지난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마카오행 비행기를 타려던 김정남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 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지난 3월 초 기소됐지만 사건의 중대성 때문에 관할이 상급 법원으로 바뀌는 등 우여곡절 끝에 재판이 늦어졌다.

두 사람은 이날 오전 8시쯤 방탄조끼 차림으로 법원으로 호송됐다. 검찰은 공판에서 "두 피고인은 도주한 다른 용의자 4명과 함께 명백한 살해 의사를 갖고 김정남을 죽였다"고 했다. 법정에서는 이 4명이 누구인지 언급되지 않았지만, 지난 3월 16일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은 김정남 암살 직후 북한으로 도주한 북한 국적 홍송학(34)·오종길(55)·리지현(33)·리재남(57)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령을 내렸다고 밝힌 바 있다.

아이샤와 흐엉은 그러나 각각 통역을 통해 무죄를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2월 검거 당시 "리얼리티 TV 쇼를 위한 몰래 카메라인 줄만 알았다"고 호소해왔다. 이들의 변호인들도 공판 전 기자들과 만나 "피고인들은 속았을 뿐이며 법정에서 무죄를 밝혀낼 것"이라고 했다. 아이샤의 변호인 구이 순 셍 변호사는 "아이샤는 김정남 얼굴에 바른 물질이 독이란 걸 몰랐다"고 했다. 그는 "아이샤는 자신을 TV 리얼리티 쇼 제작자로 소개한 홍송학에게 포섭돼 공공 장소에서 낯선 이 얼굴에 오일이나 핫소스 등을 바르는 연습을 했다"며 "범행 당일 공항에서도 홍송학이 김정남을 지목하며 아이샤의 손에 VX 신경 작용제를 발라줬다"고 했다.

한편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 "김정남 암살 이후 그의 둘째 아내 이혜경과 자녀 김한솔·솔희 남매가 피신하는 과정에서 방해 시도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WSJ는 이들의 피신을 도왔다고 알려진 '천리마 민방위' 관계자를 인용해 "김한솔은 미국·중국·네덜란드의 도움으로 대만 타이베이 공항을 거쳐 피신했다"며 "최종 목적지 비자를 확인하느라 긴장 속에 30여 시간을 타이베이 공항서 보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피신 과정에서도 몇몇 단체들의 방해 시도가 있었다"고도 했다. WSJ는 "이는 김한솔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의미"라고 했다. 김한솔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베이징=이길성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