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지시로 '가야 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가 100대 국정 과제에 포함된 가운데, 영호남 광역 지방자치단체들이 추진하는 가야사 사업 예산이 3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30일 경남·경북·부산·전북 등 가야문화권 4개 광역지자체에 확인한 결과, 향후 10년 또는 20년 동안 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야사 사업 예산이 2조9681억원에 달했다. 현재 사업 계획을 수립 중인 전남까지 합하면, 3조원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4개 광역단체 '희망 예산' 3조원

금관가야가 있던 김해 등 가야 대부분의 영역을 포괄하는 경상남도는 가야사 2단계 사업에 해당하는 48개 사업을 2037년까지 진행하는 데 예산 1조1007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가야 고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김해 가야역사문화도시 지정, 함안·합천의 가야문화 관광단지 조성 등의 사업이 주요 내용이다.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부터 8년간 1297억원을 들여 김해 대성동 고분군과 구지봉 등을 정비한 '1단계 사업' 후속 사업인 셈이다.

[문화재청이 복원한다는 훈민정음, 이래서 예산낭비]

5세기 중반 이후 '후기 가야' 세력이 일부 지역에 미쳤던 전라북도도 가야 관련 사업에 적극적이다. 전북도는 지난달 가야사 연구·복원을 위한 전담반을 만들고 봉수대, 산성, 제철 유적 등 복원 대상 가야 유적 674곳을 정했다. 이 중 271곳을 전략사업으로 선정해 향후 8538억원을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발굴·복원 뒤에는 장수 가야 왕궁터, 가야문화체험관 등 관광자원 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대가야의 중심이었던 고령이 있는 경상북도는 '경남에 비해 소극적인 게 아니냐'는 내부 비판 속에서 지난 6월 25개 사업 7500억원 규모의 가안(假案)을 수립했다. 고령의 대가야 전시관, 가야 역사 관광벨트 조성 등의 사업이 포함됐다. 전기 가야의 영역 안에 있었던 부산도 향후 20년 동안 2636억원을 들여 가야문화 체험벨트(가야의 길), 복천동·노포동 고분군과 동래패총의 발굴조사 및 정비 등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연구·조사가 우선' 엄포 통할까

지금까지 막대한 비용 때문에 좀처럼 엄두를 내지 못하던 가야사 관련 사업 계획들이 대통령의 말 한 마디 이후에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셈이다. 사업비의 상당 부분은 중앙정부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산시의 경우 사업비가 많이 들어가는 3개 사업의 57%에 국비 투입을 희망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문화재청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문화재청은 이달 초 가야 관련 지자체 관계자 40명을 불러 "가야사 관련 사업은 유적에 대한 조사·연구가 최우선"이라며 "무분별한 발굴·정비와 보여주기식 이벤트 사업은 철저히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자체로부터 사업계획서를 받아보고 나서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새로 발굴하는 유적이 아니라 기존에 사적으로 지정된 26곳과 관련한 사업비만 해도 1조원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가야 유적이 아닌 곳도 포함시키거나, 관광객 유치를 노리고 테마파크에 가까운 시설을 만들려는 계획도 있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헛물켜지 말라"는 '경고'까지 나왔다고 한다.

반면 지자체들은 "대통령 지시 이후 석 달이 되도록 문화재청이 한 일이 뭐냐"고 항변하고 있다. 면밀한 계획하에 지역별 사업 규모를 조정하는 대신 '윽박지르기'만 했다는 얘기다. 지자체의 대응은 갈린다. 경남도는 '김수로왕 하동 행차길 복원' '칠왕자 성불지 성역화' 등 '관광 사업' 쪽에 가까운 프로젝트는 장기검토 대상으로 돌렸다. 일부 시·군에선 사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나 문화재청 대신 국토교통부를 설득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리는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시장·군수협의회' 주최 세미나에는 국토교통부,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이 후원 단체로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