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가공무원 9급 최연소 합격자 노명현(18)군이 수험서를 쌓아놓고 펀치 날리는 시늉을 하고 있다. “복싱으로 수험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했다.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최연소 합격자는 열여덟 살이다. 접수 인원(22만8368명) 역대 최다, 경쟁률 46.5대1을 뚫은 이 미성년자는 평균보다 10년쯤 먼저 '공무원(公務員)이라는 산'에 올랐다. 놀라우면서도 궁금했다. 왜 그토록 빨리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택했을까. 지난 22일 경기 수원의 집으로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막상 합격 통보를 받으니 기쁘기보다는 멍했어요. 꿈인지 현실인지. 엄마가 환호하며 울고 계셔서 그제야 실감했지요."

공무원 최연소 합격자 노명현군은 지난달 31일 휴대전화로 받은 최종 합격(검찰직) 안내 문자를 보여주며 "필기 합격도 어려웠지만 면접에서 말을 더듬어 떨어지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공직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게 뭔지 묻기에 책임감이라고 답했더니, 그걸 실천한 사례를 들어보라 하는데 당황해 머릿속이 하얘졌다"고 했다.

노군은 고교 1학년까지 다니고 2015년 초 공무원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학교 부적응 같은 다른 문제는 없었고 수학·과학 과목 성적이 안 나와서 의기소침해질 무렵 자퇴를 결심했다"고 했다. 역시 공무원인 부친(48)의 권유도 있었다. 그래도 열여섯 살은 인생 항로를 정하기에 어린 나이 아닌가.

"어려서부터 추리물과 과학 수사에 끌렸어요. 경찰·검찰에 관심을 갖게 됐고 중학교 때부터 장래 희망을 그 분야 공무원으로 잡았습니다. 고교 진학 후 성적이 부진해 고민하다 '남보다 일찍 시작해보자' 결심했어요." 이날 동석한 부친은 "저도 검정고시를 통해 사회에 정착한 경험이 있어 '전략을 바꿔보자'고 생각했다"며 "공직에 관심이 있다면 대학 진학이라는 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주변에선 "9급 공무원 되기 힘든 세상인데 일찌감치 선택 잘했다" "효자 났다"고 축하한단다.

수원으로 이사 오기 전 과천에 살던 노군은 집 근처 도서관에 다니며 하루 10시간씩 공부했다. 인터넷 강의만 들었을 뿐 노량진 등 학원가엔 다니지 않았다. 그는 "수험 생활 초반엔 기초가 없어 적응하기 어려웠다"며 "엄마가 오전 6시 도서관에 함께 가 공무원 시험을 같이 준비하면서 도와주셨다"고 했다. 모친은 일종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다가 3~4개월 뒤 그만뒀다. 부친은 만 18세부터 응시 자격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숨기고 초반부터 아들을 독려했다.

"집 앞에 있는 복싱 도장을 소개받은 게 신의 한 수였어요. 공시를 준비하는 동안 거의 매일 낮에 도장에서 샌드백을 두드리거나 스파링을 했어요. 오래 앉아 있어야 하고 초기엔 우울증도 왔는데 복싱을 하면서 정신이 맑아졌죠."

여드름과 솜털이 보송보송한 노군의 집엔 샌드백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인생 경험도 짧고 말주변도 부족해 면접시험 준비가 특히 괴로웠다"며 "샌드백을 퍽퍽 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했다. 공무원 시험은 필기로 정원의 약 130%를 뽑고 면접에서 30%를 떨어뜨린다.

친구들은 대학교 1학년이거나 재수생이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많다. 공시 준비에 바친 10대 시절의 2년이 아깝지는 않은지, 남들이 대부분 경험하는 대학 생활을 동경하진 않는지 물었다. 그는 "캠퍼스 생활이 가끔 궁금하긴 하다"면서도 "목표는 어차피 검찰 공무원이었기 때문에 일찍 달성한 게 더 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요즘엔 드라마를 몰아서 보고 게임도 실컷 한다. 공무원으로 5~6년쯤 일하다 입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젊은이들이 공무원에 매달리는 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도전을 두려워하고 안정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노군은 "공무원의 매력은 안정성"이라고 말했다.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 정년과 노후 보장만은 아니었다. 그는 "자리가 안정되면 뭔가에 도전할 수 있고 자아 계발도 가능하다"며 "소외된 비행 청소년을 권투와 연결 짓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검찰이 범죄자를 검거하고 심판하지만 바른길로 이끌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저처럼 괴로워하는 고교생이 있다면 이런 길도 가능하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어요. 겸손과 배려의 각오로 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