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훈 주필

한국은 제 마음대로 하는 지도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마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자기 자신의 정치적 이익과 돈 계산 외에 나머지는 다 하찮은 문제들이다. 아시아와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 대북(對北) 문제에 재미를 붙였는지 매일 내키는 대로 한마디씩 하고 있다. 그때마다 우리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시진핑 중국 주석도 한국에 제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다. 한반도가 중국의 일부였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베 일본 총리도 한국에 대해서만은 제 마음대로 하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다. 북한의 김정은도 제 마음대로 한다.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쏘고 싶으면 쏘고, 터뜨리고 싶으면 터뜨린다. 한국이 이런 사람들 일색으로 둘러싸인 게 사상 처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미국이 아군(我軍)인지 무엇인지 헷갈릴 지경이 된 것은 전무후무할 일이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의 계산 착오와 오판이다. 특히 트럼프와 김정은이 서로를 오판할 수 있다. 트럼프는 거의 유일하게 대북 정책에서 점수를 땄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북 정책과 미국 국내 정치가 섞이게 되면 오판이 나올 수 있다. 김정은에겐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탄 실험이 꼭 필요하다. 저질렀을 때 미국이 군사 공격을 할지, 중국이 정말 원유를 끊을지에 대해 오판할 수 있다. 오판과 오판이 만나면 심각한 사태가 벌어진다. 기회이기도 하다. 어쨌든 정체돼 있던 북핵 문제의 판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아직은 수사(修辭)뿐이지만 중국까지 움직이고 있다. 어차피 살 길이 막막한 북한 체제는 여기서 오판을 한두 번만 더 하면 명(命)을 스스로 단축할 수 있다. 모든 게 우리 하기에 달린 것이다. 우리가 못하면 나라가 위험해지고, 우리가 잘하면 국운을 열 수 있다. 안보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한 고위 관계자는 “경제는 관료와 기업들, 전문가들이 즐비해 그들이 잘하면 되지만 안보는 단 한 사람이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단 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 눈을 감고 주먹을 쥐었다. 그 단 한 사람의 인생관, 사생관, 역사관, 국가관, 지식과 경험, 성격이 안보상 결정적 기로에서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민의 생명이 걸린 갈림길에서 이 길이냐, 저 길이냐를 누군가는 결정할 수밖에 없는데 그 결정은 본질적으로 무한책임을 수반한다. 헌법에 뭐라고 적혀 있는지를 떠나 그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은 한 나라에 결코 두 사람이 있을 수 없다. 단 한 사람뿐이다. 재작년 8월 북한이 목함지뢰 도발을 일으켰을 때 안보상 큰 기로에 섰다. 우리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북이 확성기를 타격하겠다고 나왔다. 이미 연평도에 포격을 한 전례가 있었다.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면 북에 굴종하지만 당장 확전은 막을 수 있다. 확성기 방송을 계속해 북이 타격하면 우리도 응사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면 확전될 수 있다. 어느 쪽으로 갈 것이냐를 누가 결정할 수 있나. 안보실장, 국방장관, 합참의장, 군사령관, 군단장, 사단장 누구도 결정할 수 없다. 오직 단 한 사람뿐이다. 결국 마지막에는 모두가 그 한 사람을 쳐다볼 수밖에 없다. 북한도 기로에 섰다. 그들도 확전되면 화력에서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대구경 포가 아닌 소구경 화기로, 그것도 확성기를 겨냥하지 않고 남측으로 몇 발 쏴 체면만 차리려고 했다. 그런데 남측에서 155㎜ 포탄 29발을 응사했다. 155㎜ 포탄 폭발을 부근에서 경험하면 그 위력에 충격을 받는다. 북은 평소 “우리 풀 한 포기만 건드려도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호언해왔다. 북에서도 이 갈림길에서 결국 단 한 명이 어느 쪽이냐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 체제의 특성이 그래서만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이 문제는 단 한 사람밖에 결정할 수 없다. 북의 그 단 한 사람은 체면을 구기더라도 남측에 일단 굽히기로 결정했다. 폭력적 언동을 하고 호기를 부리는 그이지만 ‘죽을 각오’는 안 돼 있다는 사실이 공표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정부에서 최소 한 번은 이런 기로가 있었다. 김영삼 정부의 첫 북핵 위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NLL 위기,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연평도 위기 때 나라는 단 한 사람의 결심에 따라 방향을 정했다. 잘한 결정도 있었고, 못한 결정도 있었다. 위험한 결정, 어처구니없는 결정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결정을 결국 단 한 사람이 혼자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사람들이 그 한 사람이 좋은 결정을 내리도록 도울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 아무도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군사·안보 문제에 지식과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국민 생명을 책임진 지도자로서 근본적인 자질과 결단력, 관(觀)의 문제다. 제 마음대로 하는 지도자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위중한 상황에서 우리는 5일 뒤에 그 단 한 사람을 선출한다. 무슨 기준으로 투표를 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유권자가 이 선거가 ‘그 단 한 사람’을 뽑는 것이란 사실만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