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임종기 환자가 편히 돌아가실 수 있는 법을 만들었다더니, 되레 무의미한 연명의료만 조장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웰다잉'을 위해 만든 연명의료결정법이 의료계 비판에 직면했다. 대한암학회·한국의료윤리학회·한국임상암학회·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등 13개 의학회는 25일 공동 성명서를 내고 "매년 20만여명 만성질환 임종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를 어떤 기준으로 중단 또는 유보할지는 큰 사회적 문제"라며 "그런데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에는 진료 현장에 적용할 세부 지침이 없고, 비윤리적 규제도 있어 혼란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 법에 규정된 내용 가운데 호스피스·완화의료 부분은 오는 8월 4일부터, 연명의료 결정은 내년 2월 4일부터 시행된다. 현재 이 법 시행령·시행규칙에 대한 입법예고 절차가 진행 중이며 다음 달 4일까지 계속된다.
◇"임종 앞둔 환자에 녹음기 대라니…"
의료계는 이 법이 의료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이상적(理想的) 법령'이라고 주장한다. 연명의료란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 투여 등의 의료 행위를 말한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이러한 연명의료가 자칫 환자의 고통만 연장할 수 있으니 이를 개선해 환자가 편히 눈 감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담당의사와 관련 분야 전문의 한 명이 '회생 가능성이 없고, 사망이 임박한 상태'라고 동의해야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 중단 의사표시를 스스로 밝히는 게 원칙인데, 연명의료중단의향서를 미리 작성하지도 않고, 명확한 의사표시도 불가능한 경우엔 배우자·직계비속·직계존속 중 2명 이상의 일치한 의견을 받아야 한다.
의료계는 이 법을 그대로 따르자니 자칫 비윤리적 문제까지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임종을 앞두고 직접 서명을 못 할 정도로 힘이 빠진 환자를 상대로 참관인이 입회한 상태에서 환자의 뜻을 녹음하도록 한 규정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기보다는 환자에게 일종의 의무를 지우며, 환자의 인권과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게 의료계 주장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을 어길 경우 현장 의료진에 대한 처벌 규정이 많고, 세부 규정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교수는 "연명의료를 중단했다가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의사들이 인공호흡기를 떼지 않고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늘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각 병원 중환자실이 마비될 수도 있다고 의료계는 주장했다.
◇"가이드라인은 제시하겠지만…"
정부는 입법예고 기간에 의료계 우려를 충분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연명의료 연장을 결정할 때 명확한 행정지침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선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전공의도 연명의료 결정에 참여시켜 의료진 부담을 더는 등의 의견은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 제정 취지에 맞지 않는 요구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임종 환자의 의사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녹취 등을 의무화한 규정에 대해서는 "'본인 의사를 명확하게 확인하자'는 게 모법(母法)의 취지이며, 의료진의 확인만으로 연명의료 여부를 결정하기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황의수 복지부 생명윤리과장은 "의료계는 법 위반 시 처벌 규정을 줄여달라고 하지만 이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며, 법 시행 전에 법을 개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