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은 한없이 아름다운데(夕陽無限好), 어쩌나 황혼에 가까운 것을(只是近黃昏)."
당나라 시인 이상은이 '낙유원에 올라(登樂遊原)'에서 읊은 절창을, 유병례(63) 성신여대 중문과 교수는 이렇게 해설한다. "석양과 황혼이 광대하게 어우러지는 해 질 녘은 성찰과 미학, 탄성과 탄식, 일탈과 감흥의 시간입니다. 낮과 밤이 산문의 시간이라면 해 질 녘은 시(詩)의 시간인 것이지요."
그 '시간'이란 인생의 성숙기를 맞은 정년 전후 세대를 빗댄 것이다. 유 교수는 시니어를 위한 한시(漢詩) 해설집 '서리맞은 단풍잎, 봄꽃보다 붉어라'(뿌리와이파리)를 최근 냈다. 그는 "오래도록 '석양'과 '황혼'을 잊어버리고 소외된 채 살다 지친 21세기의 장년층을 시로 위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책은 KBS1 라디오에서 1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방송한 원고를 보완해 나왔다. "방송 시간이 새벽 4시 35분이었어요. 도대체 누가 이걸 들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오더라고요." 시니어 세대에 맞는 한시 60여편을 고르고 친척 누님 같은 차분하고 다정한 말투로 방송한 것이 청취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어떻게 그렇게 맛깔나게 해설하느냐' '한시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전통문화 속에 녹아 있는 한시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다들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유 교수는 좀 더 풍요롭고 행복한 노후의 삶을 살려면 '내려놓고 비울 줄 아는 자세'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한시가 백거이의 '술잔을 들며(對酒)'인데요, 여기서 그런 삶의 자세가 보입니다."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蝸牛角上爭何事)? 부싯돌 불꽃처럼 짧은 순간 살거늘(石火光中寄此身). 풍족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자(隨富隨貧且歡樂), 하하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不開口笑是癡人)'라는 시다. 앙앙불락 살면서 서로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품위를 갖추고 자연스럽게 늙는 지혜가 담겨 있다는 얘기다.
그는 "한시에 별 관심이 없던 젊은 학생들도 수업을 듣고 나면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시련과 좌절을 극복하는 시인들의 인간애가 따뜻하게 녹아 있거든요. 역시 천고의 절창은 세월을 이기는 것이겠지요." 국립대만사범대에서 백거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유 교수는 20년에 걸친 '중국문학이론비평사'의 번역 작업을 곧 마무리할 예정이다. 2년 뒤 정년을 맞고 '초보 노년'에 접어들게 될 그는 "황혼이 초라하거나 서러운 게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왜 이렇게 자신이 없어지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