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절 날 서울 종로구청 가까운 순댓국집에서 이른 점심을 때웠다. 식당이 전경들로 붐볐다. 우연한 옆자리에서 그들 무전기를 귀동냥했다. 1소대 먹고 나면 2소대, 다음은 3소대 하는 식으로 차례를 정한 모양이었다. 국밥 한 그릇 비우면 밤늦게까지 태극기·촛불 집회가 릴레이로 이어진다. 저녁밥은 기약 없다. 방패 들고 몸으로 막아야 할 광장을 차벽(車壁)이 대신한 덕에 그나마 요기할 짬을 냈을 것이다. 아들 또래가 뚝배기에 얼굴을 묻고 더운 콧김을 뿜는다.

▶서울 광화문 복판에는 주말마다 경찰 버스 수십~수백대를 줄 세운 거대 울타리가 들어선다. 경찰은 태극기 집회와 촛불 집회를 따로 디귿자(ㄷ)로 에워싸 차벽을 친다. 양쪽이 부딪칠세라 세종 사거리에도 동서(東西)로 차벽을 쌓는다. 이걸 경계 삼아 북쪽엔 촛불이, 남쪽엔 태극기가 일렁인다. 두 집회를 두 차벽이 두 쪽으로 갈랐으니 사이 공간 세종대로 300미터가 '광화문 DMZ'인 셈이다. 행인이 차벽 틈새를 찾아 허둥댄다.

▶경찰은 오래전부터 병력 수송 버스를 시위 통제에 동원했다. 그러나 '차벽'이라는 말은 노무현 정부 들어와 처음 들었다. 그때도 국경일 기념식을 보수와 진보가 제각각 치렀다. 진보 쪽이 보안법 폐지, 이라크 파병 철회를 내세우면 보수 쪽은 반핵·반김, 국권 수호로 맞섰다. 서울 용산 미8군 주변, 그리고 광화문에서 시위대가 과격해지는 낌새를 보이면 경찰은 버스 울타리로 지킬 곳을 감쌌다. 차벽은 경찰에게 방어선이었고, 차라리 참호였다.

▶2008년 초여름 광우병 시위가 번졌다. 광화문에 컨테이너 바리케이드가 등장했다.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마다 컨테이너 박스를 60개 넘게 실어와 2단으로 쌓았고, 양쪽 끝을 경찰 버스로 이어붙였다. 해외에도 이름난 '명박산성(明博山城)'이다. 단절의 상징처럼 됐다. 접근이 차단된 주변 상점은 매출이 급감했고, 상인에겐 '통곡의 벽'이 됐다. 그 뒤 경찰 버스로만 벽을 세우자 '명박열차'라고 불렀다.

▶차벽도 진화했다. 시위대와 전경이 맞부딪치지 못하게 하려는 데서 발전해 이제 '태극기'와 '촛불' 사이 범퍼 역할을 한다. 집회에 나온 고사리손이 꽃을 들고 와 경찰 버스에 테이프로 붙인다. 그 순간 '꽃벽'이 됐다. 꽃 같은 평화가 이어지길 빈다. 그러나 국민 마음엔 앙금이 쌓인다. 이념과 현실을 두 동강 낸 차벽은 베를린 장벽만큼 암울하다. 멀잖은 곳에 차벽을 바라보고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두 분 동상이 서 있다. 죄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