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 1919'라는 제목만 보고 극장에 들어선 관객이라면 기모노를 입은 배우들이 활보하는 무대 앞에서 의아하다는 생각이 것이다. 더구나 "조선인들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몰려다니고 있다"는 말에 "기분 나쁘다"는 대사가 이어진다. "(합방은) 그들이 원해서였는데, 왜 독립하겠다는 건가요?" "조선인은 자기 일을 결정하지 못하고 힘을 합쳐 무엇을 할 수 없다"고 하는 데 이르면 아연해진다.

1919년 서울에 거주하던 일본인의 편견 어린 시각으로 3·1 운동을 다루는 연극‘서울시민 1919’.

연극 '서울시민 1919'(히라타 오리자 작, 이윤택 연출)는 3·1 운동이 발발하던 1919년 3월 1일 낮 12시부터 2시, 경성(서울)에 살던 중산층(이라지만 당시 기준으론 무척 부유한) 일본인의 가정집이 무대다. 1989년 이 작품을 초연한 일본 극작가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는 "극히 선량해 보이는 일본인들 무의식의 집합체가 침략과 식민 지배를 실현시켰고, 지금도 일본 사회를 좀먹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 했다"고 설명한다.

연출가 이윤택은 '조용한 연극'으로 유명한 히라타의 원작을 훨씬 다이내믹한 모습으로 무대에 올렸다. 스무 명이 넘는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는 격정적이고, 대화가 끊길 때조차 소리 없는 아우성이 계속된다. 겉으로는 밖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곧 폭발할 듯한 긴장감이 고조된다. 등장인물은 하나둘씩 집을 나가 어디론가 사라지는데, 처음엔 조선인 하녀들이 퇴장하더니 가업의 흥행을 위해 초청한 스모 선수도 실종된다. 이윤택은 "식민지 체제에서 조선인의 정체성을 감추려 하던 사람들이 결정적인 순간 민낯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 작품은 성균관대 앞 명륜동 주택가 집을 개조해 만든 연희단거리패 '30스튜디오'의 개관 기념작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무대 장치로 활용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풍금으로 연주되는 당시 일본 유행가 '도쿄부시(東京節)'는 충격적이다. 멜로디가 '독립군가'와 똑같기 때문이다. 두 노래 모두 미국 군가 '조지아 행진곡'이 원곡이었던 것. 동일한 사건을 반대편 시각으로 바라봐 관객을 당혹하게 하는 이 연극 전체를 함축한 듯했다.

▷20일까지 금·토·일요일 명륜3가 30스튜디오, (02)763-1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