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결정 지을 '선택'은 결국 선택하는 자의 선택에 달린 것
한 사람의 '선택'을 좌지우지하는 결정적 원인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 '선택'이 그저 오늘 점심은 짜장면을 먹을 지 짬뽕을 먹을 지 메뉴를 정하는 수준이 아니라, 내 목숨이 붙을 지 떨어질 지를 가름할 수도 있는 중차대한 '선택'이라면? 나의 '선택'은 무엇을 따라갈 것인가? 그것이 부(富)인가? 명예인가? 의리인가? 인정(人情)인가? 그 무엇이 되었든 '선택'의 근거는 결국 선택하는 자의 선택일 뿐이다.
일본 경무국 경부 이정출은 현재는 조국이 아닌 일본 제국주의에 복무하고 있다. 과거 상해임시정부에서 일을 했다는 그의 전력을 보아하니 나름 독립운동 비슷한 활동을 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변절하여 입신양명 중이다. 번듯한 집과 아내, 자식도 있다.
그가 조선인으로서 일본 경찰이 되어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는 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어쨌든 그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 선택의 곡절은 영화 속에서 세세히 표현되지 않지만 이정출의 이 대사를 들으면 변절을 택한 그의 마음이 적잖이 짐작은 된다.
"넌 이 나라가 독립이 될 거 같냐?"
수십 수백 번이나 좌절된, 독립을 위한 조선의 수많은 시도를 경험했을 이정출에게 '대한독립'이란 말은 죽어서나 가볼 수 있는 '극락' 같은 말과 비슷한 느낌이었지 않았을까 싶다. 저 대사에는 깊은 피로감마저 느껴진다. 이정출은 언제 어느 때 '극락'에 보내질 지 모를 독립운동을 하느니 개똥밭 같은 이승에서 배신자로 살기로 한다.
김우진은 의열단 핵심 단원이다. 의열단은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와 주요시설을 파괴할 테러를 계획 중이고 김우진은 그 작전의 리더다. 김우진의 선택은,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독립운동을 하는 것. 초개 같은 목숨을 건 그의 선택은 뜨겁기만 하다.
차가운 이정출과 뜨거운 김우진이 만났다. 서로 다른 속셈은 감춘 채, 술 몇 잔이 오가더니 이제는 호형호제. 두 사람의 선택은 이제 어떻게 달라질까.
이정출에게 주어진 단 두 개의 선택지. 그의 선택을 따라가는 김지운 감독
하지만 영화 '밀정'은 선택의 곤란함을 두 사람 모두에게 짊어지우지 않았다. 선택의 여지를 두 사람 모두에게 주었다면 김지운 감독이 애초에 원했던 '콜드 느와르'가 어쩌면 꽤 그렇듯 하게 만들어졌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선택의 괴로움은 오직 이정출에게 주어졌다. 선택지는 많지도 않다. 두 가지뿐이다.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친일이냐, 아니면 '실패해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냐.
자, 그럼 영화는 앞으로 이정출의 어떤 선택을 그려나갈 것인가.
송강호가 연기한 이정출은 매 장면마다 선택의 기로에서 기가 막힌 처세술을 보이며 양 진영을 왔다갔다 한다. 이정출의 선택이 아직은 확실하지 않은 때에 그를 둘러싼 다수의 인물이 주인공에게 가하는 영향력이, 공을 서로 주고 받듯 번갈아 가해진다. 특히 하시모토의 등장은 이정출의 처세에 누구보다 많은 영향을 끼쳤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부와 명예, 가족의 안위도 포기한 이정출의 선택은 사실 공감하기 어렵다. 선택의 원인이 되는 훈훈한 에피소드가 몇 가지 보여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정출의 차가움이 충분히 데워질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특히 무심하게 지나간 이정출의 아내와 자식이 유독 잔상에 남는다. 안정된 가정을 포기하면서까지 이정출을 뜨거운 실패의 전장으로 내보낸 것은 무엇일까. 도저히 그 뜨거움이 온전히 느껴지지 않는다. 송강호의 훌륭한 연기가 이정출의 선택을 어느 정도 뒷받침하고 있지만 다소 힘겹다.
이에 대해 변명이라도 하듯 김지운 감독은 언론 시사 후 "영화 '밀정'은 차갑게 시작해서 뜨겁게 끝났다"라고 고백했다. 그렇다면 이정출의 선택이 어느 쪽으로 향했으리라는 것은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대략 짐작할 만하다. 대한민국 국적의 영화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어차피 하나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일제 치하 시대의 갈등이란 극단의 악과 순백의 선이 맞붙은 것이므로.
김지운 감독은, 이익을 내야 하는 상업영화 감독으로서도 아니고 대중의 정서에 굴복한 나약한 창작자로서도 아닌, 단순히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어쩔 수 없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차가움을 포기하고 인물의 뜨거움을 쫓는 것. 한국사에서 일제시대라는 암흑의 세월이 차지하는 들끓는 정서를 고려한다면 감독의 그러한 선택은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전개였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 '밀정'은 그러한 김지운 감독의 변화를 차분하게 담아낸 최선의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차가울 수는 없었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무자비한 영화 '악마를 보았다'도 천연덕스럽게 만들었던 감독이다. '밀정'의 인물들이 각자의 현재 위치에서 최대한 냉정하게 '선택'을 하는, 서슬 시퍼런 영화도 한번 정도는 보고 싶었다.
미처 관객을 충분히 설득시키지 못한 채, 폭탄 더미를 실은 자전거를 끌고 조선총독부 건물로 들어가는 약관의 청년 독립운동가의 뒷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끝난다. 뜨거운 독립에의 염원으로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이 아니라 더 차가울 수 있었던 김지운 감독의 푸르스름한 '밀정'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