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미(44)의 손톱엔 아무것도 칠해져 있지 않았다. 샌들을 걸친 발에는 그 흔한 페디큐어 흔적도 없었다. 여배우 특유의 화려함은 이제 그녀 것이 아닌 듯했다. "바빠서 손·발톱 관리할 시간이 없어요. 그래도 자연스럽죠?"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우 추송웅의 딸이자 연극과 뮤지컬, 방송과 영화를 종횡무진 누비며 개성 강한 연기를 보여줬던 추상미는 요즘 영화감독으로 활동한다. 단편 연출 생활을 끝내고 이제 장편 극영화에 도전하고 있다. 뮤지컬 배우 이석준의 아내이자 다섯 살짜리 아들을 둔 워킹맘인 전직(前職) 여배우가 내민 명함엔 보아스필름 감독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직 1인 기업이에요. 요즘은 무대나 카메라 앞에 서는 대신 투자자들한테 파워포인트로 프레젠테이션하러 다니죠. 사람과 돈을 모아야 하니까요." 허투루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듯 그녀는 등에 짊어진 백팩에서 노트북부터 꺼내 들었다.

최근 그녀는 재단법인 통일과나눔(이사장 안병훈)의 '통일나눔펀드' 지원 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6·25전쟁 이후 동유럽으로 보내진 북한 고아들의 행적을 쫓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예정이다. 서울 논현동의 카페·레스토랑 겸 전시 공간 '갤러리 로얄'에 앉자마자 그녀는 영화 이야기부터 풀어 놓았다.

"탈북 청소년들 치유하고 싶다"

―어떤 내용의 다큐인가.

"6·25 끝나고 1만명 넘는 북한 고아들이 당시 사회주의권인 동유럽 국가로 보내졌다. 그중 폴란드에 가장 많은 6000여 명이 갔다. 2차 대전의 피해가 가장 컸던 나라의 가난한 시골에서 북한 고아들이 자란 스토리다."

―스토리는 어떻게 발굴했나.

"친구가 다니는 출판사 사장님으로부터 폴란드의 한 마을에 묻혀 있는 북한 여자애 이야기가 있다고 들었다. 우리 전쟁고아들이 세계 각국으로 입양된 것을 생각하니 기구하더라."

―시나리오는 직접 쓰나.

"이 노트에서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홀로코스트(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시아 전쟁고아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은 감동적이다. 상처로 상처를 치료하는 '관계'의 메커니즘을 장편 영화로 만들고 싶다. 다큐는 그 사전 작업이다."

―배우는 선발했나.

"8월 말 탈북 청소년 대상 오디션을 한다. 탈북자 학교인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으로부터 아이들이 낮은 자존감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재능 있는 아이를 선발해 함께 떠날 것이다."

―데뷔작으로 너무 스케일이 크지 않나.

"의미(meaning)와 가치(value) 모두를 추구하고 싶다. 현재 유럽이 골치를 앓고 있는 난민 이슈에 대한 시사점도 찾으려 한다. 결국 난민 아이들이 '외로운 늑대'가 되어 IS(이슬람국가)로 가지 않나. 그 옛날 폴란드 시골 학교의 선생님들처럼 아이들 상처를 끌어안아야 한다."

여배우, 엄마, 그리고 영화감독

단편영화 촬영 현장의 추상미 감독(가운데)

―TV에서도, 무대에서도 한동안 보이지 않더니 '짠' 하고 감독으로 나타났다.

"마흔 되기 전 연출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에 2009년 중앙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동안 단편 영화 3편을 연출했다. 첫 번째 감독한 작품 '분장실'은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전주국제영화제와 서울여성영화제 등에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바쁜데 아이는 어떻게 키웠나.

"육아책 잔뜩 쌓아놓고 40개월 고집스럽게 내 손으로 키웠다. 남편이 공연 들어가면 아기랑 혼자 있는 날이 많았다.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아침마다 아이 떼놓고 나오기가 힘들지만, 아이가 자라면 이해하리라 본다."

―지금 아이는 누가 돌보나.

"첫째 올케 집에 맡긴다. 우리는 어머니와 오빠들까지 모두 일산 식사동 한 동네에 모여 산다."

―영화감독 된 것은 아버지 영향인가.

"아버지는 혼자 1인 7역, 8역을 하셨다. 대본 쓰고, 미술·작곡 모든 것을 혼자 했다. 아버지가 지금 내 나이에 돌아가신 것은 정말 아쉽다. 아버지는 '뭔가 다시 한다면 영화감독 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아버지의 유산이라고 한다면.

"지금 내 모습 아닐까. 막내이자 외동딸인 나는 아버지 마스코트였다. 항상 극장에 데리고 다니셨다. '빨간 피터의 고백'을 100번도 넘게 봤다. 3남매가 아버지 재능을 조금씩 나눠 물려받았다. 큰 오빠(추상욱)는 공연기획자, 둘째 오빠(추상록)는 독립 장편 영화 두 편 찍은 감독 겸 배우에 음악적 재능도 뛰어나다."

―연기 공부는 공짜로 했겠다.

"유인촌 아저씨, 이혜영 아줌마… 이렇게 불렀다. 언젠가 한 영화제에 드레스 입고 참석했는데, 당시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반갑다면서 볼을 잡아당긴 일도 있다. 그분들 눈엔 아빠 따라와 객석에 앉아 있던 꼬마로만 보였을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빨간 피터의 고백'이 성공을 거뒀을 때 전국 극장에서 돈을 싸 들고 왔다. 하지만 아버지는 곰팡내 나는 지방 대학가를 돌며 무료 공연을 고집했다. 유신정권 치하에서 데모하고 돌 던지던 대학생들이 잠깐 멈추고 극장에 왔다. 연극 한 편이 사람들을 성찰하게 하고 일깨울 수 있다. 나 역시 그냥 상업 영화는 하고 싶지 않다."

"상처를 치유하며 우리는 성장한다"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아버지와 보낸 시간은 적지만, 내게 큰 영향을 줬다. 크게 볼 때 내가 열심히 사는 게 아이한테 좋다. 내 유년이 불행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며 오히려 내가 성장하고 있다."

―불행한 유년?

"순탄치 않은 삶이었다. 열네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탈북자나 전쟁고아처럼 상처 가진 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에 관심이 많은지도 모른다. 상처를 치유하며 우리는 성장한다."

―연기에 대한 미련은 없나.

"무대에 대한 동경은 항상 갖고 있다. 내가 만드는 영화에서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배역이 있으면 일단 그건 무조건 내가 맡을 것이다. 하하!"

―남편 이석준이 아내의 연기 지적에 스트레스 받는다더라.

"남편이 '헤드윅' 출연할 때인데 '연기 어땠어?' 묻길래 '헤드윅은 안 보이더라'고 말한 걸 여기저기 소문냈다. 나름대로 스트레스 받은 모양이다. 요즘 남편 연기는 최고다."

―잘하는 요리는?

"요리는 젬병이다. 그래도 아이가 좋아하는 주먹밥, 남편 김치찌개 된장찌개 정도는 한다."

―제작 일정은 어떻게 되나.

"9월 중순 다큐 제작을 위해 폴란드로 떠난다. '제3비전'이란 제작사와 컨소시엄 형태다. 장편 영화는 내년 늦은 여름 크랭크인이 목표다."

1 가회동 한옥 게스트하우스에 3박 4일 틀어박혀 시나리오 쓸 때 앤티크숍에서 2만5000원에 충동 구매한 목걸이. 2 다이어리는 보물 1호. 항상 손에 들고 다니며 작품에 쓸 주요 대사, 캐릭터 분석 내용을 메모 한다. 3 프레젠테이션이 많다 보니 언제나 가방에 넣고 다니는 노트북. 4 작년 11월 할리우드에서 독립 영화 제작자들을 만나고 돌아올 때 LA인근 아웃렛에서 구입한 투미 백팩. 5 남편이 타준 커피가 담긴 텀블러. 집에는 각종 공연 기념품 텀블러만 스무 개가 넘는다.

추상미는

1972 서울 출생

1994 연극 '로리타'로 데뷔,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1998 CBS 라디오'추상미의 영화음악' 진행

1999 SBS '접속 무비월드' MC

2001 환경정의시민연대 홍보 대사

2002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로테 역

2003 KBS 연기대상 우수 연기상

2004 뮤지컬 '빠담빠담빠담' 에디트 피아프 역

2006 SBS 연기대상 연속극 부문 조연상

2010 단편 영화 '분장실'로 감독 데뷔

2013 단편 '영향 아래의 여자' 부산국제 영화제 와이드 앵글-한국 단편 경쟁
부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