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1〉 80대 노인인 앙드레(박근형)는 전직 탭댄서로, 딸 안느, 사위 앙투완과 함께 파리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는 모든 게 바뀐다. 그는 전직 엔지니어였고, 딸 안느는 애인 피에르와 함께 런던에 살고 있다. 갑자기 처음 보는 남자가 자신을 폭행하고, 모르는 여자가 와서 자기가 딸 안느라고 한다. 사람도 상황도 계속 바뀐다. 그는 치매 환자다.

〈연극 2〉 중년 여성 안느(윤소정)는 남편(이호재)이 자기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확신하고, 늦게 퇴근한 남편에게 어디 갔다 오느냐며 똑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장성해서 자기 곁을 떠나간 자녀들을 그리워하다가, 여자친구와 다투고 집으로 찾아온 아들 니콜라 앞에서 빨간 드레스를 보여주며 산책을 나가자고 한다. 그녀는 우울증 환자다.

연극 ‘아버지’와 ‘어머니’에서 각각 치매와 우울증 환자를 연기하는 박근형(왼쪽)과 윤소정.

연극 1은 '아버지'(박정희 연출), 연극 2는 '어머니'(이병훈 연출)다. 프랑스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 플로리앙 젤레르(37)의 두 작품을 국립극단이 한 무대에서 한 회씩 번갈아가며 올리는 방식으로 공연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의 의식 내부로 들어가 보는 듯한 독특한 심리극이다.

'아버지'의 극 전개는 두뇌의 착간(錯簡)을 스캔하는 듯하다. 기억의 서사가 어그러지는 상황에서는 시간의 선후 관계나 공간의 진실성이 모두 모호해진다. 소품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점점 텅 비어가는 무대처럼, 기억이 점차 소멸한다는 것은 세상과 자신을 연결시켜 주는 고리, 나아가 존재 자체가 스러져가는 것임을 연극은 보여준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다 키운 남녀가 정체성 상실을 느끼는 '빈 둥지 증후군'을 보여준다. 우울증이 심해 약물에 손을 댄 주인공은 병원으로 실려가고, 자신의 일방적인 사랑이 가족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두 작품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두려움과 외로움이다. 현대 연극답지 않은 빈번한 암전은 각 장면의 상황 자체를 가위눌린 체험처럼 조각낸다. "당신은 혼자 늙어갈 거예요, 슬프고 외롭게"란 극 중 대사는 관객의 가슴을 채찍처럼 후려친다. 번역극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 한국적인 부모를 연기한 박근형·윤소정의 열연은 원작(原作)에 윤기를 흐르게 한다.

▷15일까지 명동예술극장,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