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일명 김영란법)에 대한 합헌(合憲) 결정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고 후진적 접대 문화를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 시행 초기 자영업자, 과수·축산 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청탁 문화'를 혁명적 수준으로 바꾸는 기회로 만들자는 것이다. 9월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은 역대 반(反)부패 관련 법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28일 "각종 비리와 스캔들로 정치 사회의 각 분야에서 규율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고, 국민의 우려도 큰 상황"이라며 "김영란법이 부정부패 문화를 바꾸는 청량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구 전 법무부 장관은 "헌재가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은 이 정도 획기적인 대책 없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 아니겠느냐"며 "충격 요법을 통해 우리 사회의 투명성이 혁명 수준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적용 대상이나 처벌 범위 등을 놓고 논란이 여전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극약 처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맑은 사회, 청렴성과 투명성이라는 기준에서 한국 사회는 아직 부족하다"며 "헌법재판소가 방향을 잘 잡았다"고 말했다.

국제 투명성 기구가 국가별 청렴도를 분석해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CPI)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은 전체 조사 대상 168개국 중 37위를 기록했다. 칠레(23위), 보츠와나(28위), 폴란드(30위)보다도 국가 청렴도가 낮았다.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시대에 맞지 않는 낙후된 '접대 문화'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알쏭달쏭 김영란법... 상황따라 처벌여부 달라진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힘 있는 공무원의 '스폰서' 역할을 한 데서 시작한 우리 접대 문화가 이젠 권력을 가진 사람이 대놓고 접대를 요구하고, 힘없는 일반인들은 이를 당연히 여기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법 시행을 계기로 공무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관행처럼 줬던 선물, 식사 대접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사회·문화적 각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접대·청탁 문화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공정한 경쟁이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한 전직 법무부 장관은 "3·5·10(식사·선물·경조사비 제한액·단위 만원) 지키는 방법 같은 캠페인을 하면 사람 만나는 문화도 곧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관계에서의 변화를 예견하는 시각도 있다. 정호승 시인은 "이 법 하나로 부정부패의 사슬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겠지만, 물질이 오가면서 유지되는 관계보다는 믿음·신뢰에 의한 관계 형성을 추구하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제 시대가 바뀔 때가 됐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대관(對官) 업무 관행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기업들이 법인카드로 결제한 접대비는 해마다 늘어 지난해 10조원을 기록했다. 하루 270여억원꼴이다. 한 기업 대관 업무 담당자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주말 골프 접대는 물론 술을 곁들인 저녁식사도 어려워질 것"이라며 "업무 방식을 바꿔야 하는 부담도 있지만, 그간 친목 도모라는 명목으로 관행처럼 이뤄졌던 접대, 회식, 경조사 문화는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이경상 기업환경조사본부장은 "과거 기업의 정치자금 제공을 법으로 금지했을 때도 '관행이 없어지겠느냐' '음성적으로 돈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었지만 결국 불법 정치자금이 사라져 기업 환경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법 시행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계속 보완하자는 주문도 있었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은 "공정 사회, 청렴 사회로 가기 위해 대변혁이 필요한 시점에서 고육지책으로 만든 법이지만 이게 과연 잘 지켜질지는 의문"이라며 "시행된 이후의 혼란을 잘 살펴 계속 개정·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승규 전 법무부 장관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소비가 너무 위축이 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도 잘 살펴서 사회 정의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법을 손질해 가자"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현행대로 법이 시행될 경우 발생할 심각한 내수 경기 위축 등 경제적인 타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합헌 결정과는 별도로 향후 개념의 모호성, 경제적 타격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후속 대책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계에서도 기대와 우려가 함께 제기됐다. 배우 손숙씨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동안 권력을 지나치게 남용했기 때문에 이런 법이 생겼을 테지만, 이 법 때문에 오히려 인정(人情)이 메마른 세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숙씨는 "하지만 일단 법을 시행해 보고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합리적인 선에서 가이드라인을 다시 정해보자. 그렇게 하면 모두에게 좋은 방향으로 법이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